“수천 곳 중 어디에…” 檢, 접선장소 못찾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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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연 씨 美아파트 구매대금 의혹 ‘13억 돈상자’ 전달한 과천역 인근 비닐하우스촌 가보니
방향감각 잃을만큼 복잡,기억 힘든 장소 선택한듯… ‘선글라스男’ 아직 오리무중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매 의혹사건 제보자인 이모 씨가 2009년 1월 10일 13억 원이 든 돈상자를 받은 곳으로 지목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비닐하우스단지. 이 씨는 경기 과천역에서 만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50, 60대 남성’의 지시대로 인근 비닐하우스 단지로 가 돈상자를 옮겨 실었다고 주장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매 의혹사건 제보자인 이모 씨가 2009년 1월 10일 13억 원이 든 돈상자를 받은 곳으로 지목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비닐하우스단지. 이 씨는 경기 과천역에서 만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50, 60대 남성’의 지시대로 인근 비닐하우스 단지로 가 돈상자를 옮겨 실었다고 주장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내가 빌린 차에 그분을 태웠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우회전, 우회전하니 비닐하우스가 있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길가에 사과상자와 라면상자가 섞여서 일곱 개가 쌓여 있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매 의혹사건 제보자 이모 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3억 원(100만 달러)이 든 돈상자를 전달받은 경위를 이렇게 설명해 왔다. 2009년 1월 10일 오전 10시경 경기 과천역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50, 60대 남성’을 만난 뒤 그의 지시에 따라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돈상자를 옮겨 실었다는 것이다.

과천시 대공원 사거리에서 양재 나들목으로 가는 과천-의왕고속화도로 구간 5km 주변에는 꽃과 채소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수천 개가 설치돼 있다. 이 비닐하우스 단지의 면적은 6km²로 각각의 농원이 운영하는 검은색, 흰색의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다. 비닐하우스 단지를 마주한 양재천 북쪽 우면산 밑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초보금자리주택 신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이 씨에게 13억 원의 돈상자를 건넨 의문의 남성이 미리 이곳 주변 지형을 살핀 뒤 향후 이 씨가 쉽게 기억할 수 없는 장소를 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이 비닐하우스 단지 안에선 방향이 쉽게 구분되지 않고 자칫 길을 잃을 가능성도 높다.

특히 이 남성은 이 씨가 미국에서 오래 살아 과천역 주변 지리를 잘 알지 못하고 좁은 대지에 촘촘히 들어선 비닐하우스가 생소한 점 등을 이용해 이곳을 접선장소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돈상자를 건넨 때는 인적이 드문 토요일 오전이어서 사람들의 눈을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을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과상자 등에 나눠 담은 것도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007 작전’처럼 돈상자 전달이 주도면밀하게 이뤄졌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채널A 영상] ‘노정연 100만 달러’ 고급 외제차를 산 것처럼…

하지만 검찰은 이 씨가 돈을 건네받은 곳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닐하우스 내부가 아닌 길가에서 돈을 전달한 데다 이 씨가 비닐하우스 주변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특정한 장소를 지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검사와 수사관 5, 6명이 비닐하우스 단지를 돌아봤으나 돈을 건넨 정확한 장소를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이 ‘선글라스를 낀 남성’의 정체를 밝히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은 이 씨가 과천역에서 이 남성과 만나 돈 전달 장소로 함께 이동할 때까지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돈상자를 지킨 공모자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13억 원 송금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경모 씨가 귀국하면 이 남성의 신원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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