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업용지 살피러 오가… 미행과는 무관” 미행 결론땐 도덕성 타격

  • 동아일보

재계 “소송 진의파악 하려고 미행 붙였을 것”
업무방해죄 처벌은 쉽지않아

이재현 CJ그룹 회장 미행 파문에 대해 삼성그룹은 23일 “직원이 호텔신라의 사업 용지를 살펴보려고 오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미행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회장을 미행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CJ가 차명재산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여론몰이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감지됐다. 일각에서는 “CJ 측이 삼성물산 직원인 김모 씨 등의 미행 행위에 대한 처벌보다는 삼성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망신을 주기 위해 형사고소 ‘이벤트’를 벌인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제기하고 있다. 설령CJ의 주장대로 이 회장을 미행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라는 것이다.

반면 재계에서는 삼성 측이 소송과 관련한 이 회장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미행을 붙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CJ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소송 제기 사실이 알려진 직후 중재를 약속하고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이재현 회장의 동태를 감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삼성으로서는 이건희 회장이 이 전 회장과의 소송에서 질 경우 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등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삼성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차명주식 중 삼성생명 주식 824만 주(4.12%) 등 7100억 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이 이 전 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는 날에는 이건희 회장의 다른 형제들까지 소송에 나서는 등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 또 이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와 후계구도마저 흔들 수 있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삼성과 CJ의 해묵은 갈등은 장남인 이 전 회장 대신 삼남인 이 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1994년에는 이건희 회장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CJ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앉히고 당시 CJ 상무였던 이재현 회장을 몰아내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양측이 충돌했다. 이듬해에는 삼성이 이재현 회장 자택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가 치우는 소동이 벌어졌다. 두 그룹의 갈등은 지난해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다시 불거졌다. 삼성SDS가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CJ 측이 발끈한 것.

언젠가는 삼성을 넘어서겠다는 CJ의 의지와 노력은 재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CJ는 최근까지도 경력사원을 채용할 때 각 계열사에 “삼성 출신을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삼성 출신 임원을 스카우트해 요직에 앉힐 정도로 삼성의 핵심역량을 빼오는 데 힘써 왔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일로 CJ 측의 소송 중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미행으로 결론난다면 삼성 측은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CJ 측이 소송의 배후라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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