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토요일부턴 아이들과 뭘 하나?]주5일 수업 전면 시행 코앞… 답답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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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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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된 학교… 일 못놓는 학부모… 학생들 “학원 가야 해요?”

《 다음 주 시작되는 새 학기부터 초중고교 학생들이 토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 2006년부터 격주로 적용됐던 주5일 수업제가 올해부터 전면 시행되기 때문이다. 주5일 수업제의 전면 실시가 열흘 정도 남은 시점에서 정부의 홍보 부족과 일선 학교의 준비 부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당수 학교는 토요 프로그램에 필요한 지원금을 이달 중순에야 전달받아 어떻게 운영할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다. 예산 규모에 따라 강사와 프로그램, 대상 학생이 달라지므로 미리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토요일에 일해야 하는 학부모는 자녀가 주말을 어떻게 보내도록 해야 할지 불안해한다. 이 틈을 타 사교육 업체들은 주말 특강을 쏟아낸다. 주5일 수업제가 정착되려면 한동안 시행착오가 불가피해 보인다. 》
○ 학생들은… 친구들은 공부할텐데 문화체험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매주 같이 여행을 다니자는데,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서울 양천구 M중학교 1학년 이모 군(14)은 “주5일제 수업이 전면 시행되면 오히려 쉬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군은 주말마다 8시간짜리 영어과외를 받고 영어 수학 클라리넷학원까지 다닌다. 정신없이 바쁜 주말을 보내는 이 군에게 격주로 시행해 왔던 2시간 반의 토요일 수업은 잠시나마 친구들과 여유롭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군은 “문화체험, 예술공연 관람으로 휴일을 보낼 한가한 학생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남는 시간은 학원 수업으로 채워질 게 뻔하다”고 했다. 이 군은 주위 친구 대부분도 같은 이유로 주5일제 시행에 반대했다고 했다.

초중고교 주5일제 수업 전면 시행으로 오히려 학업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학생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0일 서울지역 초중고교 학생 15명을 인터뷰한 결과 학생 대부분은 주5일제 시행의 의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에는 의문을 나타냈다.

주5일제 수업 시행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친구들이 토요일에 더 많이 공부할 게 뻔한데 나 혼자 쉴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노원구 D고교의 김기철 군(17)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쉬어야 상상력이 발휘된다는데 학생들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자기계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자율학습을 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은평구 S초교 4학년 조아연 양(11)은 “엄마가 올해부터 놀토(노는 토요일) 때는 학원에 다니라고 했다”며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입시가 눈앞에 다가온 예비 고3 수험생과 진학을 위해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예체능계 학생들은 주5일제 수업 시행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파구 J여고 2학년 박자영 양(18)은 “토요일에 등교해도 이름뿐인 클럽활동이나 자율학습 외에는 하는 일이 없어 시간이 아까웠는데 주말을 부족한 교과 공부에 집중 투자할 수 있게 돼 좋다”고 했다. 경기 안양의 A예고 2학년 이하민 군(18)은 “일주일에 7시간밖에 피아노 연습을 못 했는데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연습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같은 학교의 미술 전공 친구들도 주5일제 시행을 반겼다”고 했다.
○ 학부모들은… 집에 두면 게임만 할텐데 주말반 수업비도 걱정…

“초등학생 둘만 집에 두면 걔들이 뭐 하겠어요. 게임중독 될까봐 걱정이에요.”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주5일 수업을 얘기하며 음식점 종업원 최은숙 씨(39)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인 두 아들이 토요일에 학교를 안 가면 집에 방치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최 씨는 주말 손님이 많은 경기 용인시의 한 음식점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어 토요일 오전이 가장 바쁘다. 이삿짐센터 직원인 남편 역시 주말에 일이 많아 집에 거의 없다. 최 씨는 “애들이 토요일은 물론이고 금요일에도 밤늦도록 게임할 수 있다고 신이 났어요.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게임에 빠져 있을 광경이 눈에 선하네요”라고 푸념했다.

주5일제가 시작되면 직격탄을 맞는 것은 바로 최 씨 같은 워킹푸어(working poor), 즉 저소득 맞벌이 가정이다. 전국 초중고교생 720만 명(2011년)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자녀는 75만 명. 이들 중 상당수는 최 씨의 두 아들처럼 토요일마다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 최 씨는 “교사들이야 토요일에 쉬고 학원은 돈 벌어 좋겠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정책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중산층 가정도 사교육비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육모 씨(49)는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주말반 학원비로 한 달에 70만 원을 쓴다. 다음 달부터 토요일에 학교가 쉬면 학원의 주말반 수업 시간이 늘어날 테고 그러면 사교육비가 100만 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게 육 씨의 고민이다. 주5일제 수업을 반기는 부모들도 있다. 주5일제로 근무하는 공기업 차장 강모 씨(41)는 이틀의 휴일을 활용해 자녀와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계획이다. 강 씨는 “딸이 중학교 1학년인데 고학년이 되기 전에 가족여행도 자주 가고 아이의 견문도 넓혀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목동에 사는 박모 씨(43·여)는 “토요일이 통째로 비면 예체능이나 사회과목 과외를 받는 데 편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주5일 수업제가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되면 학교의 빈자리를 양질의 사교육으로 대체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학교는… 예산 얼마 될지 모르는데 방학 전엔 계획 짜봐야…

“토요일에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게 학교에는 더 부담이 돼요.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니까요. 지금도 주5일 수업제 계획을 짜느라고 신학기 준비도 제대로 못한다니까요.”

대개 2월은 초중고교가 학년별 교사와 담임을 정하고, 상반기 행사 및 방과후 운영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다. 올해는 여기에다 토요일 프로그램 계획까지 짜느라 더 정신이 없다고 했다.

서울 강북의 A초교 교장은 “토요활동에 대한 수요조사부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학 중에 학부모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신입생 사정을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겨울방학 전에 조사했으면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교육청이 얼마를 지원할지도 모르는데 학생 수만 먼저 알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개별 학교 차원에서는 방과후학교와 차별화된 내용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경기 성남시의 B중 교사는 “음악 미술 체육은 물론이고 정규 교과목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이미 방과후에 하고 있다. 같은 내용으로 토요일에 하겠다면 학생이 흥미를 잃거나 학부모들이 외면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그는 “토요일에 봐줄 사람이나 돈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그냥 그런 프로그램을 듣고,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비싼 학원이나 체험학습을 가게 될 수밖에 없다”며 양극화를 우려했다.

전남 보성군의 보성중은 지난해 여러 가지 토요활동 계획을 세웠지만 농어촌 지역의 학교에 오려는 외부강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축구부와 학급의 날만 운영하다 보니 전교생 260명 중 60명 정도만 나왔다.

이 학교의 A 교사는 “전공을 하지 않은 교사가 음악이나 체육을 지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토요일마다 컴퓨터실 체육관 도서관을 개방했지만 이용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토요일에 나오지 않으려고 서로 미루는 바람에 골치를 앓았다. 토요 프로그램을 외부 강사에게 맡기더라도 교장 교감 또는 평교사 중에서 몇 명이라도 나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광주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자녀가 있는 교사도 토요일에 학교에 나가기를 싫어할 정도”라고 말했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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