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伊유람선 탔던 한국인들 귀국… “승무원들이 먼저 구명정 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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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이불로 감싸 나왔더니…” 생생한 그 밤의 악몽

허상탁 씨(60)는 인천공항 입국장 E번 게이트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다시 한국 땅을 밟는 딸에게 선물로 줄 장미꽃 12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허 씨의 부인 손말순 씨(57)도 연신 두 손을 모았다 폈다.

딸과 사위는 13일(현지 시간) 승무원과 승객 4229명을 태우고 지중해 관광에 나섰다가 토스카나 제도에서 암초에 부딪친 뒤 좌초돼 전복됐던 이탈리아 유람선 콩코르디아에 탔던 한국인 승객 35명에 포함돼 있었다.

19일 오후 6시 26분 인천공항 1층 입국장 E게이트 전광판에 이탈리아 로마를 출발한 대한항공 KE928편의 도착 사인이 떴다. 예정됐던 도착 시간인 오후 5시 10분보다 1시간 16분이 지난 뒤였다.

딸 소연 씨(31)의 모습을 본 허 씨는 그저 말없이 딸을 안아줬다. 사위 엄태훈 씨(36)는 울먹이는 장모를 감싸 안았다. 소연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사고 당시 남편이 간식을 사러 간 사이 갑자기 선반에 올려둔 화장품 하나가 스르륵 떨어졌다”며 “이어 화장품이 주르륵 떨어지자 ‘뭔가 잘못 됐구나’ 생각했는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지 26시간이 지난 15일(현지 시간) 0시 30분경 객실에서 구조된 신혼부부 한기덕, 정혜진 씨(29) 부부도 출국장 게이트가 열리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트레이닝 하의에 감색 패딩 점퍼를 입고 나온 한 씨는 부인이 끌고 나온 작은 검은색 캐리어를 자신의 손으로 들면서 “깜깜한 객실에 있을 때 무섭기도 했지만 다른 분들이 더 고생이 많았다”며 “구조대가 왔을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건강해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날 귀국한 승객들은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위급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데다 대피와 구조도 무질서 상태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날 귀국한 승객들은 “사고가 일어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갑판 위로 올라왔는데, 사고 뒤 2∼3시간 후에야 구조헬기가 뜨고 작은 배들이 주변으로 모였다”며 “승무원들도 당황해 전부 우왕좌왕하느라 갑판은 아수라장이 됐고 당황해서 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승객을 대피시키는 승무원이나 마지막까지 배를 지킨 선장이 나오는, 영화 ‘타이타닉’ 같은 이야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던 송문희 씨(46)는 “안내 방송도 없어 나중에야 구명정을 타러 갔는데 한동안 구명보트에 태워주지 않아 황당했다”고 말했다. 송 씨는 “자다 깨 겁에 질린 아이들을 이불로 둘둘 말고 밖으로 나와 추위에 떨었지만 승무원은 승객을 대피시키지 않은 채 자기들이 먼저 구명정에 올라탔고 선장은 도망쳤다”며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고 덧붙였다.

인천=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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