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6일 03시 00분


16년전 아들 잃은 동병상련… 김종기 청예단 명예이사장광주·대구 유족에 ‘공감편지’

‘아드님의 죽음 소식을 듣는 순간, 저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찢기는 고통이 과연 그만할까요?’

지난해 12월 학교폭력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D중학교 2학년 A 군(당시 14세)의 집에 12일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직원이 이런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전달했다. 같은 날 광주 J중학교 학교폭력 희생자 S 군(당시 14세)의 부모에게도 같은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자녀를 잃은 유가족에게 드리는 편지’란 제목으로 청예단 설립자인 김종기 명예이사장(64·사진)이 보낸 것이다.

1995년 6월 6일 새벽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 이사장의 아들 대현 군은 ‘이젠 쉬고 싶다’는 짤막한 쪽지만 남기고 아파트 4층 자신의 방에서 뛰어내렸다.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폭행하던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차 위로 떨어져 목숨을 건진 대현 군은 옥상에 올라가 다시 뛰어내렸다. 김 이사장은 아들을 잃은 뒤 당시 대기업 중역 직을 관두고 같은 해 11월 청예단을 만들었다. 처음엔 운영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전국 13개 지부를 두고 교육과학기술부와 함께 ‘학교폭력 SOS 지원단’이라는 상담지원 전문기관도 운영한다.

김 이사장은 편지에 아들을 향한 애틋함과 한(恨)을 절절히 담았다. 그는 편지에서 “바위보다 무겁고, 철못보다 깊이 파고들며, 가슴이 무너져 없어진 듯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다”며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대현이는 아내와 제 삶 속에 엄연히 살아 있다”고 두 부모를 위로했다. 그는 “아직도 대현이가 ‘아빠’ 하고 뛰어오지 않을까 현관을 몇 번씩 내다본다”며 “어른들은 아드님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죄인들”이라고 전했다. 이어 “폭력과 횡포에 신음하는 다른 아이들의 고통을 없앨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편지를 읽은 A 군의 어머니는 “같은 아픔을 겪은 분의 글이어서인지 마음속 깊이 와 닿아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며 “아직은 아들을 잃은 상처를 달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 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A 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유서를 남겨놓고 가서 그래도 수사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인데 광주 S 군과 같이 증거가 없어 피해 가족이 두 번 세 번 고통을 더 겪으니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 달라”고도 했다. S 군의 아버지는 “아직 마음의 상처가 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상처가 아물면 그때 다시 편지를 펴 보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편지는 대구 광주의 부모뿐 아니라 전국 모든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다”라며 “앞으로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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