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의 죽음 소식을 듣는 순간, 저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찢기는 고통이 과연 그만할까요?’
지난해 12월 학교폭력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D중학교 2학년 A 군(당시 14세)의 집에 12일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직원이 이런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전달했다. 같은 날 광주 J중학교 학교폭력 희생자 S 군(당시 14세)의 부모에게도 같은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자녀를 잃은 유가족에게 드리는 편지’란 제목으로 청예단 설립자인 김종기 명예이사장(64·사진)이 보낸 것이다.
1995년 6월 6일 새벽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 이사장의 아들 대현 군은 ‘이젠 쉬고 싶다’는 짤막한 쪽지만 남기고 아파트 4층 자신의 방에서 뛰어내렸다.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폭행하던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차 위로 떨어져 목숨을 건진 대현 군은 옥상에 올라가 다시 뛰어내렸다. 김 이사장은 아들을 잃은 뒤 당시 대기업 중역 직을 관두고 같은 해 11월 청예단을 만들었다. 처음엔 운영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전국 13개 지부를 두고 교육과학기술부와 함께 ‘학교폭력 SOS 지원단’이라는 상담지원 전문기관도 운영한다.
김 이사장은 편지에 아들을 향한 애틋함과 한(恨)을 절절히 담았다. 그는 편지에서 “바위보다 무겁고, 철못보다 깊이 파고들며, 가슴이 무너져 없어진 듯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다”며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대현이는 아내와 제 삶 속에 엄연히 살아 있다”고 두 부모를 위로했다. 그는 “아직도 대현이가 ‘아빠’ 하고 뛰어오지 않을까 현관을 몇 번씩 내다본다”며 “어른들은 아드님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죄인들”이라고 전했다. 이어 “폭력과 횡포에 신음하는 다른 아이들의 고통을 없앨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편지를 읽은 A 군의 어머니는 “같은 아픔을 겪은 분의 글이어서인지 마음속 깊이 와 닿아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며 “아직은 아들을 잃은 상처를 달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 뒤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A 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유서를 남겨놓고 가서 그래도 수사가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인데 광주 S 군과 같이 증거가 없어 피해 가족이 두 번 세 번 고통을 더 겪으니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 달라”고도 했다. S 군의 아버지는 “아직 마음의 상처가 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상처가 아물면 그때 다시 편지를 펴 보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편지는 대구 광주의 부모뿐 아니라 전국 모든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다”라며 “앞으로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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