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 203cm도 현역 가는데… “세워총,안돼~ 땅에 안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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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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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 길이는 30년째 그대로… “언제까지 총에 사람키 맞춰야 하나”

2009년 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윤모 씨(26)는 키가 193.7cm다. 다른 병사보다 한 뼘 이상 큰 윤 씨는 군 생활 내내 불편함이 많았다. 생활관 침대가 작아 밤새 다리를 구부린 채 자야 했고 판초우의 모포 등 군 지급 품목도 몸에 맞지 않았다.

장신인 윤 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K-2 소총이었다. 윤 씨는 세워총 자세를 할 때면 오른손에 쥔 총이 땅에 닿지 않아 장시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총 개머리판을 땅에 닿게 내려놓으면 어깨가 처져 선임에게 지적받기 일쑤였다. 총이 작아 구부정한 자세로 총을 잡고 쏘다 보니 사격 성적도 나빴다. 윤 씨는 “생활의 불편함은 참을 수 있었지만 키 때문에 사격 성적이 나오지 않아 구박을 당하고 특박(특별외박)도 나가지 못해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 204cm 병사도 같은 총으로?

국방부는 3일 징병검사 기준을 대폭 강화한 징병 신체검사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다음 달 8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키의 보충역 판정 기준이 기존 196cm 이상에서 204cm 이상으로 상향 조정돼 윤 씨보다 10cm가 큰 병사도 입대할 예정이다.

입대 병사의 신장이 커짐에 따라 30년째 그대로인 K-1, K-2 소총 길이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부 병사와 간부는 “총에 사람을 맞추라는 전근대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군이 쓰고 있는 소화기는 1980년대 초 키 170cm에 맞춰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큰 병사는 견착 시 눈이 가늠쇠에 닿을 지경이어서 머리를 당겨야 하고 키가 작은 병사는 눈과 가늠쇠가 멀어 고개를 내밀어야 해 불편하다. 무엇보다 타격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

2009년 9월 1일 국방일보에는 개인의 신장 차에 맞춘 맞춤형 K-2 개머리판과 K-1 어깨받침쇠를 개발한 2008년 육군 교육사령부 전투발전제안 전투장비 부문 은상 수상작이 보도되기도 했다. 키에 따라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를 단계별로 제작해 탈부착이 가능한 구조다. 당시 제안에 따라 2008년 7∼9월 교육사령부가 예하 부대 장병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전진무의탁 사격측정을 실시한 결과 170cm 이상∼175cm 미만 장병의 명중률이 67%인 데 비해 185cm 이상은 40%, 165cm 이하는 34%로 낮았다. 반면 신장에 맞춘 맞춤형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를 장착한 총기로 사격을 한 결과 165cm 이하 장병은 40%포인트가 증가한 74%를, 185cm 이상 장병은 31%포인트가 늘어난 71%를 기록했다.

○ 군 생활 자신감도 떨어뜨려


문제는 사격 부진이 군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사고까지 유발한다는 점이다. 당시 사격측정에 참가했던 S 대위는 “군 평가의 기본인 사격 실력이 떨어지면 자신감이 동반 하락해 다른 내무 생활에도 의기소침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부대에서는 사격을 못하는 병사에 대해 부대 평가를 떨어뜨렸다며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구의 한 부대에서 A 일병이 자살하기도 했다. 당시 해당 부대 간부는 “사격 등 교육훈련 때 잦은 실수로 선임병에게 여러 번 혼났다”고 말했다.

불편은 남성보다 평균 키가 작은 여군도 예외가 아니다. 키가 163cm인 현역 여군 대위(32)는 “지휘관은 사격 실력이 뛰어나야 부대원들을 통솔할 수 있어 간부들도 사격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간부는 2008년 개발됐던 맞춤형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를 개인적으로 구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6단계로 개머리판 길이 조정이 가능한 M4A1 소총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사격에서 키는 굉장히 민감한 요소”라며 “총신 자체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 탈부착만으로 길이를 조정할 수 있다면 효율적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표준화된 소총을 사용하는 게 어렵다는 주장을 아직 듣지 못했다”며 “일부 필요 부대에서만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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