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스트레스 춤추며 풀어요, 힘내세요”,“아이가 어린이집서 쫓겨나게 생겼어요”
서울시 홈페이지서 접수, 강추위에도 15명 연단올라… 발언시간은 10분으로 제한
11일 서울시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 설치한 ‘시민발언대 할 말 있어요’에 나온 한 시민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발언자로 나선 시민들은 10분씩 다양한 주제로 시정
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민발언대 행사는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린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시장님, 서울의 주인은 시민이 아니라 공무원이더라고요∼.” “서울시의 애매한 기준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쫓겨나야 합니다.”
서울시가 청계광장 시민발언대 ‘할 말 있어요’를 설치한 첫날인 11일 30대부터 80대까지 시민 15명이 연단에 올랐다. 일주일간 서울시 홈페이지로 모두 16명이 신청했고 1명이 불참했다. 시민발언대 ‘할 말 있어요’는 영국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를 본떠 만들었다.
영하 8도의 추운 날씨 때문인지 경청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연사는 주어진 10분을 넘겨가며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말을 쏟아냈다. 30대 연사의 화두는 단연 보육이었다. 서울시의 보육정책이 탁상행정이라는 쓴소리였다. 60대 연사가 7명으로 가장 많았고 주택, 토지 등에 관련된 공무원의 ‘갑’ 노릇을 비판하거나 서민의 고달픔을 호소했다. 70, 80대 연사 3명은 애국심을 강조했다. 한 방송사 PD가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첫 번째 연단에 오른 김동해 씨(64)는 “생활비를 줄이며 아내에게 절약하자고 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겨우 견뎌냈어요. 가정 경제나 국가 경제나 저축하고 거품을 빼야 합니다.”
다음으로 연단에 오른 조연상 씨(66)는 공무원의 불친절한 상담을 고발했다. 조 씨는 지난해 12월 건축법 조항을 문의하려고 구청 상담실을 찾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아무리 뇌물이 금지돼 있다지만 음료수를 들고 가 ‘좀 잡숴 보세요’라고 했더니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라더군요. 그러더니 ‘목소리가 왜 크냐, 어느 대학 나왔냐, 그 나이에 왜 이런 사업을 하느냐’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신일선 씨(61)는 ‘장년층이여, 용기와 희망을 갖자’라는 주제로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 경영하던 중소기업을 중국으로 옮겼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업은 실패했고 가정도 파탄 났다”고 했다.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와 노숙을 했습니다. 숙식이 해결된다기에 모텔 화장실 청소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화물차를 운전합니다. 4년째 빚을 갚았는데 아직도 4년을 더 갚아야 합니다. 빚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춤과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인 여러분, 힘내세요.”
황혜란 씨(38)는 2008년생 아이를 둔 ‘미안한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나게 생겨서다. 이유는 애매한 기준을 내세운 서울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울형 어린이집은 유독 2, 3세 아이만 혼합반을 만들 수 없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이 서울형으로 바뀌면서 3세반 인원이 기준을 초과해 몇 명은 나가야 한다네요. 작은아이, 큰아이를 함께 돌보지 못하게 한 것은 원래 아이들을 위한 규정일 텐데 그것 때문에 쫓겨나는 아이가 생긴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황 씨는 아이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을 꺼내 들며 “시장님, 우리 아이들 가운데 어린이집에서 나가야 하는 아이를 골라 주시겠습니까”라며 끝내 울먹였다.
정헌재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은 “현안에 관한 의견은 해당 부서에 전달해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마련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한형직 인턴기자 서울대 국사학과 3학년 :: 영국 스피커스 코너(Speakers’Corner) ::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 북동쪽 끝에 있는 자유발언대로 누구든지 어떤 주제로든 연설할 수 있지만 영국 국왕과 왕실에 대한 발언이나 국가를 전복하려는 주장은 금지한다. 1872년 당시 하이드파크가 대중 연설 장소로 인기를 얻으면서 스피커스 코너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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