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불황의 늪… 청춘들까지 노숙인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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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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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추위에 떨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 동아일보DB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추위에 떨며 웅크리고 앉아 있다. 동아일보DB
정모 씨(27)는 6개월 전 다니던 전구 공장에서 해고당한 뒤로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있다. ‘몸도 젊고 성한데 용역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봤지만 불황이 길어지면서 그마저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노숙 초창기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찜질방을 전전했지만 요즘은 마지막 자존심도 모두 버린 채 서울역 상담보호센터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정 씨는 “막막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며 “서울역 대기실에 앉아 하루 종일 TV 보는 게 요즘 내 일”이라고 했다.

20, 30대의 젊은 노숙인이 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이 거리로 나앉는 것이다. 한번 노숙 생활에 익숙해지면 구직의지마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장기 쉼터 ‘희망의 집’ 38곳에 등록된 입소자 중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곳에 등록한 20대 노숙인의 비중은 2005년 전체의 1.5%에서 2009년 2.2%로 늘어나더니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3%대에 진입했다.

30대 노숙인의 비중은 이보다 높아 2005년 8.1%, 2006년 9.1%, 2009년 10.7%에 이어 지난해에는 12.8%로 늘었다. 특히 20, 30대 노숙인은 보호시설보다는 사우나나 찜질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감안하면 실제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 노숙인이 급증하는 데는 구직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11월 기준 20대 실업률은 6.7%로 전년 동월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34세 노숙인 김모 씨는 지난해 5월 이후 식당일을 그만두고 노숙 중이다. 그는 “취직할 용기도 나지 않고 새로 배우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다른 노숙인 김모 씨(24)도 “간질을 앓고 있어 일을 구해도 매번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다”며 “더는 의지도 없고, 남은 20대는 그냥 이렇게 살려 한다”고 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 30대 노숙인 중에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신용불량에 시달리다 결국 거리로 나앉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노동시장이 워낙 불안하다 보니 일부는 멀쩡하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돼 쪽방촌이나 서울역을 전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각종 센터에서 제공하는 복지가 오히려 젊은이들을 타성에 젖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서울시가 운영하는 희망의 집 38곳에선 희망할 경우 최장 3년까지도 머물 수 있다. 일부 종교단체들이 운영하는 상담보호센터들은 노숙인에게 숙박 식사 샤워 이발 등을 무료로 제공해 사실상 돈을 벌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다. 일부 교회는 용돈과 속옷을 나눠주기도 한다.

김영택 구세군브릿지상담센터 간사는 “노숙인을 위한 취업 주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 노동집약적 생산직이라 젊은 사람들은 기피하는 편”이라며 “20, 30대 노숙인 가운데 실제 재활에 성공해 일하는 사람은 10명 중 2, 3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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