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타실에 있다가 해경에게 맞고 기절한 뒤 깨어났습니다. 칼을 잡은 사실이 없습니다.”(청다웨이·程大偉 중국어선 선장)
15일 오후 2시 인천지법 208호 법정. 해경의 불법조업 나포작전에 맞서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하다가 이청호 경사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 및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66t급 어선 루원위 호의 청 선장(42)은 이날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수갑을 찬 채 초췌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선 청 선장과 8명의 선원에 대한 신원을 일일이 확인한 이 부장판사가 혐의 내용을 확인하자 청 선장은 불법조업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이 부장판사가 이 경사와 함께 조타실에 투입된 동료 경찰관의 진술과 혈흔이 발견된 칼, 청 선장이 입고 있던 옷 등 경찰이 제출한 살인 혐의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다시 범행 여부를 물었을 때도 청 선장은 “억울하다. 한국 해경이 나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끝까지 잡아뗐다.
결국 인천지검 공안부 이장혁 검사가 당시 이 경사와 진압작전에 나선 특공대원의 헬멧 카메라에 촬영된 동영상을 제출하며 “흐릿하지만 피의자가 조타실에서 칼을 들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며 증거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다. 이 부장판사가 큰 목소리로 다시 청 선장에게 “그럼 피의자는 이 경사가 왜 사망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정신을 잃어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청 선장의 국선변호를 맡아 영장실질심사에 참여한 차정환 변호사(42)는 “청 선장이 선원들의 폭력적 저항을 지시하거나 이 경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부인했다”며 “범행에 대한 반성이나 양심의 가책,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청 선장과 선원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청 선장은 12∼14일 진행된 해경의 피의자 신문 조사에서도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해경이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자백을 유도했지만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했다. ▼ “죄 안 지었다”… 밥 한톨 안 남기고 싹 비워 ▼
담당 경찰관이 “선원들은 갑판에 제압당한 상태로 체포돼 있었고 당시 조타실에 당신 혼자 있었는데 이 경사를 칼로 찌른 사람은 당신이 아니냐”고 다그쳤지만 청 선장은 “그런 일이 없다. 검거 당시 한국 해경에게 맞은 기억밖에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경사가 조타실 출입문을 손도끼로 부수고 들어온 것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관이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피의자도 중국에 처자식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피의자가 칼로 찔러 숨진 이 경사와 유가족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나는 그런 일(살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해경의 정당한 나포작전을 방해한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를 지시했는지도 추궁했지만 청 선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버텼다. 해경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고 묻는데도 “죄를 짓지 않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8명의 선원은 모두 해경 조사에서 폭력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를 대부분 시인했다. 또 청 선장이 출항에 앞서 “한국 해경이 단속에 나서면 배에 실어 놓은 모든 흉기를 동원해 죽을 각오로 저항하라. 잡히면 해경에게 두들겨 맞는 것은 물론이고 구속되고, 담보금도 많이 내야 한다”며 저항을 지시한 것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청 선장은 해경의 조사가 시작된 첫날 “한국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며 중국의 부인과 통화한 뒤 서울에서 변호사를 알아보기도 했다. 또 인천해경 구내식당에서 하루 세 끼를 먹었는데 밥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고 한다. 유치장에서 잠도 잘 잤다는 것이다.
청 선장을 수사한 경찰관은 “이 경사와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싶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백을 유도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며 “그의 뻔뻔함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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