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을 찾아서… 25시간 끝장재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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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내일로 미룰까요?”… 10명 배심원 “끝까지 다하죠”

■ 서울 동부지법 ‘시신없는 살인사건’ 국민참여재판 열려

“휴…너무 덥네요. 뒷문을 조금 열어주시죠.”

지난달 29일 오후 6시경 서울 광진구 구의동 서울동부지법 1호 법정에 있던 형사11부(부장판사 설범식) 좌배석 판사는 더위에 지친 표정이었다. 국민참여재판 형태로 진행된 심리 공판은 오전 10시부터 8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8시간 동안 증인 신문과 변호인, 검찰 간의 날선 공방이 이어진 까닭에 초겨울 법정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전날에도 7시간에 걸쳐 심리가 진행됐다.

저녁 휴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설 부장판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민배심원 10명에게 “밤 10시는 넘어야 끝날 것 같은데 판결을 내일로 미룰까요”라고 물었다. 배심원들은 “이왕 하는 거 끝까지 다하자”며 열의를 보였다. 이날 다뤄진 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강원 평창군의 비닐제조업체 사장 강모 씨(당시 49세) 살인 사건이었다.

2000년 11월 이 회사 직원이던 피고인 김모(46), 서모 씨(49)는 동료 양모 씨(당시 59세·4월 사망), 또 다른 김모 씨(57)와 함께 강 씨를 살해하고 2억 원을 훔친 뒤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미제로 남았던 사건의 전모는 위암 말기였던 양 씨가 죽기 직전인 올해 4월 자수하면서 드러났다.

배심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증언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재판 시작과 함께 피고인 김 씨(57)가 장애가 있는 몸을 이끌고 힘겹게 증언하자 배심원들은 판사에게 질문 쪽지를 건네며 더 많은 증언을 들으려고 애썼다. 배심원, 검사, 변호인의 질문 세례를 받은 김 씨는 무려 5시간 동안 신문이 이어지자 “몸이 불편해 앉아서 진술하기가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배심원들의 질문 세례는 밤 12시 무렵까지 계속됐다. 심리 개시 14시간이 지났지만 재판정에는 오전 10시부터 있던 방청객, 판사, 검사 등 총 40여 명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날짜가 바뀌고 새벽이 되면서 열기는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배심원 자리에 놓여 있던 물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피고인들에게 피해자를 죽일 만한 원한이 있었는지를 증언해줄 증인 신문이 끝없이 이어지고 같은 사안을 둔 변호인과 검찰의 날선 공방이 계속되자 배심원들도 지친 표정이었다. 더는 쪽지 질문도 날아들지 않았다.

이날 심리는 공장 직원인 최모 씨의 증언, 피고인 부인의 증언, 피고인 진술까지 밤새 이어지다 30일 오전 6시가 돼서야 휴정됐다. 재판장은 “아침을 먹고 오라”며 나간 뒤 오전 7시 30분에 돌아와 “판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대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오전 11시경 돌아온 판사는 “기록이 방대하고 증거 정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선고를 연기한다고 말했다. 판결 때문에 방청석에서 졸아가며 25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이날 재판은 29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25시간 동안이나 진행됐지만 배심원 평결만 내려졌을 뿐 선고는 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28, 29일 장장 32시간에 걸쳐 쏟아진 각종 진술을 토대로 진위를 판단한 뒤 2일 최종 선고를 할 예정이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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