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惡性이 하늘 찌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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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공판서 판사 이례적 표현… 무슨 사기 사건이기에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피해자를 속인 피고인의 범죄적 악성(犯罪的 惡性)이 실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기에 피고인을 법정 구속한다.”

8일 울산지법에서 열린 사기사건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의 범법사실을 이같이 지적한 뒤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통상적인 판결문에서 쉽게 나타나지 않는 격한 표현을 쓰며 피고인의 범죄를 지적한 것도,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에게 4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도 극히 이례적이다. 이 사건은 당초 검찰이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어서 수사의 공정성 논란이 예상된다.

○ 재판에서 뒤집어져


울산지법 제2형사단독 성금석 부장판사는 약사인 최모 씨 등에게서 8억7000여만 원을 편취해 사기죄로 불구속 기소된 영화사 대표 정모 씨(64)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당초 피해자인 최 씨가 2005년 11월 25일 울산지검에 고소했지만 정 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 씨는 부산고검에 항고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러자 최 씨는 부산고법에 재정신청(피해자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옳고 그름을 가려 달라고 직접 법원에 소송을 신청하는 제도)을 했다. 성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피고인 때문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막대한 재산상 피해와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다”며 “결국에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2006년 1월 창원지법에 개인회생을 신청(채무총액 5억7642만 원)하기에 이르는 등 1심 선고가 있기까지 6년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은 메디컬 빌딩 신축 계획도 없으면서 약국 임대를 미끼로 돈을 빌려놓고는 만난 사실조차 없다고 발뺌했다”고 덧붙였다. 정 씨는 메디컬 빌딩을 신축하면 약국을 임대해주겠다면서 최 씨에게서 2003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51차례에 걸쳐 총 5억6400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 꼼꼼한 증거 분석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와 증언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피해자 최 씨가 1986년 3월부터 지금까지 약사로서 약국만 운영해 왔을 뿐 건물 신축에는 문외한이고 △메디컬 빌딩 신축 동업을 조건으로 5억 원을 정 씨에게 지급했다면서 동업약정서가 없었고 △동업 이후 손익 분배 방식 등 기본적인 동업 조건에 관한 합의 자료나 진술이 전혀 없었던 사실을 밝혀냈다. 또 신축할 메디컬 빌딩 용지에 있던 기존 건물 철거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도 피고인이 당초부터 건물을 지을 의사가 없었던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판결문 말미에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글도 남겼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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