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위협’ 조폭에 경고사격 없이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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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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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총기사용 ‘3회 경고’ 매뉴얼 현실성 부족 지적에 즉각대응 새 기준 마련경찰의 현장판단 존중

앞으로는 피의자가 경찰이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는 경우 경찰이 경고사격 없이 권총을 쏠 수 있게 된다. 경찰관들이 위급 상황에 놓여도 모호한 총기 사용 규정 때문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경찰이 ‘경찰관 권총 사용 매뉴얼’ 초안을 마련한 것이다.

경찰청이 1일 공개한 초안에 따르면 피의자가 흉기로 경찰관이나 시민을 공격하는 등 중대한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멈추라고 경고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경고사격 없이도 권총을 쏠 수 있도록 했다. 경찰관을 급습하거나 타인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범행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등 부득이한 상황에선 경고사격 없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또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주하는 범인이 연쇄살인범 등 흉악범이어서 놓치면 추가범행을 할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바로 권총을 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총을 쏠 수 있는 기준을 완화한 것은 아니고 기존의 기준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라며 “권총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현장 경찰관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매뉴얼을 정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총기 관련 규정을 보면 흉기를 든 피의자가 경찰관에게 3회 이상 경고를 받고도 계속 저항하면 총기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새 매뉴얼 초안에는 ‘3회 이상 경고’ 등 기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현장 경찰관의 판단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치명적 위협이 있고 경고할 여건이 안 되면 총을 쏠 수 있게 했다. 또 피의자가 인질을 붙잡고 있어 경고사격이 더 큰 위해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거나 간첩 및 테러사건 등 은밀한 작전 수행 중에는 경고나 경고사격 없이도 총을 쏠 수 있다.

경찰관이 총기를 쓸 수 있는 단계도 세부적으로 명시됐다. 총기나 칼을 휴대한 자가 거리를 배회하거나 흉기를 갖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을 때 경찰관은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어 언제든 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했다.

2단계로 피의자가 흉기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경찰의 경고에 저항하거나 피의자가 경찰관이나 시민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면 권총을 꺼낼 수 있다. 경찰관이 권총을 꺼내 피의자에게 3회 이상 경고를 했는데도 계속 흉기를 휘두르거나 피의자가 도주를 시도할 때 경찰은 3단계로 경고사격을 할 수 있다.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흉기로 경찰관이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려 하고 체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직접 총을 쏠 수 있다. 경고사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도주하는 흉악범에게도 역시 총을 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의 초안에 대해 일선 경찰관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서울 용산경찰서의 경위급 직원은 “현장에서 총을 쏘면 감찰조사를 받게 되는데 구체적 기준이 있으면 총을 왜 쐈는지 소명하는 게 수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사급 직원은 “언제가 일반적 위협이고 언제가 치명적 위협인지는 결국 현장에서 경찰관이 판단해야 한다”며 “총을 쏘면 책임 추궁을 당하는 제도를 바꾸고 피의자 유족들의 민사소송에 대한 대비책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별로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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