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중구 무교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신숙자 모녀 구출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가 부인과 두 딸을 구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5일 오후 3시 오길남 박사(69)가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8층 회의실 연단에 올랐다. 그는 북한에 억류 중인 ‘통영의 딸’ 신숙자 씨(69)의 남편이자 혜원(35) 규원 씨(33) 자매의 아버지다.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오른 자리였지만 그는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매일 밤 아내와 사랑하는 두 딸의 호곡성(號哭聲)이 귓가에 맴돕니다. 북한행을 결정했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지만 부디 가련한 제 아내와 두 딸의 운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십시오.” 이 말을 끝으로 연단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은 오 박사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인권위는 이날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인권시민연합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와 함께 ‘신숙자 모녀 구출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역할-정부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시민단체와 함께 신 씨 모녀 구출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북한 요덕수용소에서 신 씨 모녀를 알고 지냈던 탈북자 3명이 참석해 기억을 밝혔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는 신 씨를 ‘연약하지만 친절한 여인’으로 기억했다. 그는 “신 씨 모녀가 조속히 한국 땅으로 돌아와야 한다”며 “하루는 신 씨 집에 땔감을 가져다 줬는데 신 씨가 특식으로 받아서 아껴둔 옥수숫가루로 빵을 만들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빵이 와플이었다”고 회고했다.
신분노출 위험 때문에 선글라스와 모자를 착용한 채 등장한 탈북자들도 기억을 털어놨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신 씨 모녀를 알고 지냈다는 탈북자 A 씨는 “신 씨 모녀는 대인기피증이 의심될 정도로 늘 말이 없었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다녔다”며 “그나마 큰딸이 말을 좀 하는 편이었는데 세뇌교육 탓이었는지 ‘아버지가 와야 우리 가족이 나갈 수 있다, 아버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수용소생활을 함께한 탈북자 B 씨는 “당시 아홉 살이던 규원이가 키 높이만큼 쌓인 눈을 헤치고 산에서 나무를 하는 게 마음이 아팠다”며 “미국과 일본은 대통령, 총리가 나서 북한에 잡혀 있는 자국민을 구하던데 대한민국은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도 중앙정부가 나서 신 씨 모녀 구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는 “신 씨 모녀 문제는 북한정권 차원의 범죄이자 인권침해”라며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현진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원은 “신 씨 모녀의 생사 파악이 급선무”라며 “정확한 사실관계와 구체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국제인권 비정부기구(NGO)와 국제기구 간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박선영 자유선진당 정책위의장도 참석했다. 피오나 브루스 영국 하원의원은 ‘신 씨 모녀의 사연을 영국 하원에 알렸다. 북한 수용소 내 인권유린 수사를 담당할 유엔 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서명안도 최근 하원에 제출했다’는 내용의 격려사를 보내왔다. 셸 망네 보네비크 전 노르웨이 총리도 이날 인권위로 ‘신 씨 모녀 구출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한편 이날 통일부는 전후 납북자 생사 확인과 송환 문제를 전담할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범정부 차원의 TF 구성은 신 씨 모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정감사 등에서 줄곧 제기됐던 내용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납북자 문제를 전담할 TF를 통일부 내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 TF에는 통일부를 비롯해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 경찰 등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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