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없는 금메달이지만 그래도 난 따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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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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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장애인기능올림픽서 웹마스터 종목 金 곽민정 씨

2011년 서울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의 첫 금메달을 따낸 곽민정 씨(왼쪽 사진)가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곽 씨(가운데)가 27일 대회에 출전한 모습.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2011년 서울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의 첫 금메달을 따낸 곽민정 씨(왼쪽 사진)가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곽 씨(가운데)가 27일 대회에 출전한 모습.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알아듣기 힘든 발음이었지만 곽민정 씨(31·여)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2세 때 고열로 청력을 잃은 뒤 타인의 입술을 보며 ‘말’을 읽어 왔다. 3세부터는 자신의 발음이 어떻게 들리는지도 모른 채 어머니가 배를 누르는 대로 발성 연습을 했다. 2급 청각장애인인 곽 씨는 현재 서울에서 열리는 제8회 장애인기능올림픽 한국대표팀의 첫 금메달리스트다.

28일 대회장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만난 곽 씨는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웹마스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곽 씨는 정식 공부 대신 2000년 웹디자인 회사에 취업하며 몸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취업할 수 있는 곳은 공장밖에 없었다”며 “어렵게 컴퓨터그래픽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 씨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도 했다. 직장생활 3년간 쌓은 컴퓨터 실력은 곽 씨의 인생을 바꾼 원동력이 됐다.

곽 씨는 2004년부터 청각장애인 복지관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청음회관에서 다른 장애인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램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지방 장애인기능경기대회와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결과는 계속된 낙방. 하지만 심기일전해 기능올림픽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장애인기능올림픽은 한 번 참가하면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다시는 출전할 수 없다. 수년 동안의 연마 후 기량이 최고에 도달했을 때 도전했다. 곽 씨는 “올해 내내 1등을 하기 위해 수영장 열쇠도 1번 열쇠를 받았다”며 “여러 번의 실패가 결국 이번 대회 금메달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능올림픽 금메달이 인생 자체를 바꿔주진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곽 씨의 남편인 이제명 씨(36) 역시 청각장애인이자 장애인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다. 이 씨는 2007년 일본 시즈오카(靜岡)에서 열린 7회 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아내와 똑같이 웹마스터에서 은메달을 땄다. 아내에게 장애인기능올림픽에 출전할 것을 권유한 것도, 웹마스터 독학을 도와준 이도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직업이 없다. 곽 씨는 “남편이 관공서와 기업 수십 곳의 웹마스터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모두 받아주지 않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청각장애인은 전화 업무가 불가능하다. 동료와의 소통을 통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개선해야 하는 웹마스터에겐 청각장애가 치명적인 결함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측은 “기업마다 3%의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이 있지만 청각장애인에게 사무직 업무를 맡기는 곳은 거의 없으며 채용되더라도 금방 해고되곤 한다”고 말했다.

곽 씨는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공부방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 장애인에게 멘토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학교에서 나에게만 일자리를 알선해 주지 않았을 때 ‘왜 나를 이렇게 낳았느냐’며 부모님을 원망했다”며 “인생을 놓고 고민하는 스무 살 장애 청년들에게 내가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 기능인 곽 씨가 우리 사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곽 씨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지화(指話)’가 교육 과정에 들어가길 원했다. 지화는 손가락을 이용해 한글 자모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단어 모두를 익혀야 하는 수화(手話)에 비해 배우기 쉽다. 그는 “세상이 장애인에게 비장애인의 삶을 강요하는 만큼 짧은 순간이라도 장애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모두 11명. 곽 씨 외에 이영민(귀금속공예) 모병옥(가구제작) 문승진(양장) 임민상(전자 CAD) 양우희(시각디자인) 곽재철(전자기기) 권혁진(제과제빵) 송재환(화훼장식) 김기형(CNC선반) 임재원 선수(e-스포츠) 등이다. 2위 대만이 금메달 2개를 딴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회 우승도 거의 확정적이다. 한국은 1995년 4회 호주 퍼스 대회부터 2007년 7회 일본 시즈오카 대회까지 4회 연속 우승해 이번 대회까지 우승하면 5회 연속 장애인 기능 세계 1위가 된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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