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학점보다 비전… 동서대 해외연수 프로그램 도전 성공한 3인방의 열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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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경고 밥먹듯… 학점 0.88 낙제생, 공부만 해보는 게 소원… 고물상 알바
봉사는 나의 전부… 천사표 간호학도… 그들이 떠난다, 꿈을 찾아 미국으로

학교에 돌아왔다. 모델이 되겠다는 마음을 접은 뒤였다. 수업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학점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태경이는 캠퍼스 생활이 따분했다.

안 해 본 일이 없다. 전단지 나눠주기, 식당 서빙, 배달, 야간 택배 분류, 고물상 아르바이트…. 학비와 용돈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민주에게는 하루하루가 버겁다.

주말이라지만 쉬지 못한다. 아름다운 가게에 봉사활동을 가야 한다. 중학교 때부터 8년째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부담되는 건 사실이다. 설화는 늘 시간에 쫓겼다.

세 명은 같은 비행기에 탄다. 15일 오전 11시 15분 김해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델타항공 622편. 어학연수가 목적이다. 대학생 20명 중 1명꼴로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시대지만 이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림의 떡’이 진짜 떡이 됐다. 꿈은 현실이 됐다. 이들은 언제 꿈을 꿨고, 어떻게 이뤘을까.

○ 문제아의 반란

김태경 씨는 동서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이다. 올해 나이 스물넷. 늘 주눅이 든 채로 학교를 다녔다.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아서였다.

김태경 씨는 학점은 낮지만 스펀지처럼 더 잘 빨아들일 수 있다고 말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동서대 제공
김태경 씨는 학점은 낮지만 스펀지처럼 더 잘 빨아들일 수 있다고 말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동서대 제공
그는 잘생긴 얼굴과 훤칠한 키 덕분에 수십 차례 길거리에서 캐스팅이 됐다. 군대를 다녀온 뒤 2009년에는 에스팀(ESTEEM)이라는 패션모델 업체에서 모델로 활동했다.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고 학교에 복귀했다.

공부는 힘들었지만 목표가 생겼다. 모델 생활을 하면서 명품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비주얼 머천다이저(VMD·visual merchandiser)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패션쇼의 해외 상품 가운데 국내에서 반응이 좋을 만한 품목을 골라 매장에 공급하거나 진열하고 광고하는 직업이다.

좌절과 후회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SAP(study abroad program)라는 이름의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었다. 동서대 미주 캠퍼스가 있는 호프국제대(캘리포니아 주 풀러턴)에서 9개월간 어학수업을 듣고 학점을 인정받는다. 경비는 학교에서 지원한다.

모두가 만류했다. 2학년까지의 평균 학점은 4.5점 만점에 0.88. 학사경고 세 차례. 네 학점으로 되겠느냐, 괜히 상처만 받는다…. 격려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2005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처음이었다.

○ 고물상 알바생의 도전

정민주 씨는 학교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합격하고도 개인부담액을 걱정했으나 교수님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탄다
정민주 씨는 학교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합격하고도 개인부담액을 걱정했으나 교수님의 도움으로 비행기를 탄다
정민주 씨는 같은 대학 영어학과 3학년이다. 스물다섯 살, 또래 젊은이들처럼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길 수 없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가출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요. 전단지 나눠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식당 서빙, 배달, 야간 택배 분류, 고물상 아르바이트 등 안 해본 일이 없죠. 그래서 못하는 일도 없어요.”

하루 종일 공부만 하기. 이게 정 씨의 소원이다. 영어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서로 독파할 정도로 전공을 좋아하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성격은 밝다고 자부한다.

“택배 분류 작업이 힘들어요. 거대한 드럼통을 밤새 100개씩 옮기고 아침에 학교로 달려가 수업을 듣는데 잠은 쏟아지고 집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새벽에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손님이 들어왔다가 강도가 든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편의점 사장은 “피곤한 건 알겠는데 카운터에 앉아서 자라”고 당부했다.

그도 SAP를 알리는 포스터를 봤다. “내가 선발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비행기표, 미국 대학 기숙사비, 학비는 학교에서 부담하지만 생활비는 학생 부담이었다.

○ 구호단체를 향한 계획

마음이 착하다. 학업, 봉사, 해외연수 이 모든 것을 황설화 씨는 남을 돕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한다.
마음이 착하다. 학업, 봉사, 해외연수 이 모든 것을 황설화 씨는 남을 돕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한다.
황설화 씨는 같은 대학 간호학과 2학년이다. 매주 토요일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뿌리친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부터 줄곧 해온 일이다.

간호학과에 진학하면서 봉사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졌다.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병원에서 업무를 익힌 후에는 유니세프 같은 국제구호단체에 들어갈 생각이다.

“아프리카 등 오지의 아픈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대학에 입학한 지 2년이 안 된, 나이 스물하나의 여대생은 학업과 연수와 직업을 하나의 꿈으로 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SAP 포스터가 눈에 확 들어온 이유다.

○ 부푼 꿈? 헛된 꿈?

김 씨는 무조건 지원하기로 했다. 학점이 턱없이 모자랐지만 교수의 추천이 있으면 지원이 가능했다. 안면이 있는 교수를 찾아다녔다. 추천서는 1장이면 충분한데도 2명의 교수에게 받았다.

같은 과의 조형국 교수는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엇나가지 않고 착하게 자란 아이”라며 “평소에 찾아볼 수 없던 열정이 보였고 기회를 줘도 아깝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정성이 있는 아이다. 한번 믿어보라”고 ‘압력’을 넣었다.

김 씨는 꿈과 비전을 적은 계획서를 별도로 제출했다. 건강진단서까지 첨부했다. 서류만 통과하면 면접에선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예상대로였다. 면접관들은 아킬레스건인 학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말했다. “저는 스펀지와 같은 상태이므로 물을 더 잘 빨아들일 수 있습니다.”

학교를 어떻게 빛내겠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유명한 VMD가 돼서 한국 패션산업을 해외에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또 “포털 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출신 대학에 동서대가 뜨게 되고 자연히 학교 홍보가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 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잡았다. “지금 저는 낭떠러지에 있고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최종합격자 명단에 나오지 않았다. 1차 합격자(130명)에 들어갔지만 4주 어학수업 뒤의 최종명단(100명)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예비순위 1번이었다. 1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포기하면서 뒤늦게 합류하는 행운을 안았다.

“처음에 떨어진 것을 알고는 일주일을 술로 보냈을 정도로 상심했어요. 보름쯤 뒤에 추가 합격이 됐다는 통보를 받고 기절할 뻔했다니까요.”

○ 도움의 손길

정 씨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연수자 선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심사를 맡은 김희경 영어과 교수는 “학업 성적이나 영어 실력이 우수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바른 인성의 소유자였다”며 “학업은 시간이 지나면 발전할 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와 뚜렷한 목적의식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난관은 또 있었다. 미국 연수 중의 식비 300만 원이 본인 부담이었다. 선납해야 하는데 모아둔 돈이 부족했다. “어머니께 손을 벌려야 하나.” 고민하던 그에게 빛이 보였다. 같은 대학 에너지공학부 박차철 교수가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박 교수는 대학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발과정 동영상을 보고 직접 연락해 왔다.

박 교수는 “힘든 환경에서도 노력해서 좋은 기회를 잡은 민주 군이 대견해서 도와주고 싶었다”며 100만 원을 전달했다. 정 씨는 눈물을 삼키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돼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양희자 씨는 “기회를 잡은 거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은혜를 베풀어 준 이들에게 보답할 길은 아직 멀었다”고 당부했다.

○ 남을 위한 연수

황 씨는 면접에서 만점을 받았다. 연수를 통해 얻은 성과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친구들은 취업이나 시험 합격과 같이 개인의 성취를 위해 쓰겠다고 했는데 저는 남과 나누겠다고 한 것이 특별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계획을 솔직히 얘기해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아요.”

교육을 받을 때도 그는 적극적이었다. 한국을 홍보하라는 주제에 맞춰 김밥과 비빔밥 등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를 직접 만들었다. 미국에서의 생활 계획도 이미 다 세워 놓았다. “현지에도 봉사 동아리가 있을 테니까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입할 거예요. 겨울방학 때 지역 양로원 등에 봉사활동을 나간다고 들어서 부채춤, 윷놀이 등도 준비하고 있어요.”

○ 교육은 기회

선발 과정에 대해 반발이나 불만은 없었을까. 물론 일부에서는 “나보다 학점도 안 좋은 애가 어떻게…”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언하 중국어과 교수는 “심사위원이 5명이었는데 이견이 없었다. 지방대일수록 학생의 성적이 아니라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장제국 총장은 “학벌보다는 창의력과 열정으로 인정받을 날을 기다린다”며 합격자들을 축하했다.

“생활비가 걱정이다. 400만 원 정도 가지고 가는데 떨어지면 막막해서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샴푸, 손톱깎이 등 사소한 물품까지 다 챙겨간다.”(김태경 씨)

“미국 가서 쓸 통장을 만들고 환전도 하고 짐도 싸고 너무 바쁘다. 혹시 빠뜨리고 가는 게 있진 않을까 며칠 전부터 짐을 수십 번 풀었다 쌌다 했다.”(정민주 씨)

“환경이 바뀌면 잠을 잘 못 자서 시차 적응이 안 될까 봐 밤잠을 줄이고 있다. 몸이 약해서 감기약, 두통약 등 각종 약도 꼼꼼히 챙겼다.”(황설화 씨)

세 명 모두 처음이다. 해외로 나가는 일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일도. 모두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혼자 지내야 하는 점을 걱정한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굳게 다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돌아오겠다고. 15일, 드디어 출국이다.


이경희 기자 sorimo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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