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하던 그 모습 어디로… 1994년 ‘백두’(앉아 있는 호랑이)와 ‘천지’가 국내에 들어온 직후 모습(위쪽 사진). 백두는 최근 노화로 거동이 힘들 정도로 쇠약해졌다가 극적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국립수목원 제공
지난달 29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 국립수목원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다. 수목원 산림동물원의 터줏대감인 백두산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백두’가 만 스물한 살 생일을 맞은 것. 1994년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이 기증한 백두는 국내에 생존한 백두산호랑이 가운데 최고령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일파티는 열리지 못했다. 백두가 노화로 거동이 힘들 정도로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 생사기로에서 극적 소생
호랑이의 수명은 보통 15∼20년이다. 백두는 사람으로 치면 80세를 넘길 정도로 오래 산 것. 고비는 있었다. 올해 초 백두는 극심한 식욕부진과 기력저하에 빠졌다. 특별한 병은 없었다. 나이가 문제였다. 이미 뒷다리는 제대로 서지 못해 끌고 다닐 정도였다. 2월 말 백두를 검진한 서울대 수의대 측은 “마취 후에 방사선 촬영 등 정밀검사를 할 수도 있으나 고령이라 마취도 어렵다”며 “고령에 따른 주요 기능 저하로 갑작스럽게 폐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수목원 측은 백두의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호랑이가 좋아하는 싱싱한 소의 간에다 소염제 간기능개선제 등 각종 치료약을 섞어 먹였다. 정성이 통했는지 한 달여 뒤 백두는 극적으로 기력을 되찾았다. 지금은 하루 5kg가량의 고기를 먹는다. 다만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실내 사육장에서 누워 지낸다. 과거 한국에 올 때 선명하던 줄무늬는 색이 바랜 지 오래다. 두 눈은 백태처럼 하얀 빛이 돌았다. 인기척이 들리면 가끔 고개를 들어 소리를 내거나 힘겹게 일어나 몇 걸음 걷는 것이 전부다.
백두가 처음 한국에 올 때부터 지켜본 황근연 연구사(51)는 “그래도 먹이를 제대로 먹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노인처럼 음식을 거부하는 순간이 오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백두와 함께 중국에서 건너온 암컷 ‘천지’는 지난해 5월 노화로 폐사했다. 둘 사이에 2세는 없다. 10년에 걸친 번식 시도는 실패했다. 백두에게 비아그라를 먹이기도 하고 호랑이 교미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교미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백두는 적극적이었지만 천지가 제대로 호응하지 못했다. 방한한 중국인 전문가들도 두 손을 들었다.
공교롭게 백두에 이어 2005년 중국에서 건너온 백두산호랑이 한 쌍 중에서 현재 수컷 ‘두만’(열 살)만 남았다. 암컷 ‘압록’은 다섯 살이던 2006년 세균성 신장염으로 폐사했다. 두만 역시 2세 번식에 실패했다. 폐사한 암컷 두 마리는 박제로 남아 현재 국립수목원에 전시돼 있다. ○ 2세 번식의 꿈은 다음으로
백두산호랑이 번식의 꿈을 이뤄줄 것으로 기대되는 세 번째 백두산호랑이 한 쌍이 10월경 중국에서 온다. 산림청은 지난해 중국 정부와 ‘백두산 호랑이 종(種) 보전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얼빈(哈爾濱)의 호랑이 전문 사육기관에서 호랑이를 들여와 2014년 경북 봉화에 개장하는 백두대간수목원 내 ‘호랑이숲’에서 관리할 계획이다. 수목원 개장 전까지는 대전오월드(동물원)에서 위탁 사육한다.
현재 국내에는 약 50마리의 백두산호랑이가 있고 일부 동물원에서 번식에 성공했지만 산림청은 정부 차원의 종 번식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백두나 두만이 실패한 백두산호랑이 2세 번식의 임무는 새로 올 호랑이가 짊어지게 됐다. 황 연구사는 “백두가 호랑이로 태어나 자기 후손을 남기지 못한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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