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만화가 11명 ‘24시간만에 한 작품 그리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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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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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예술공장 ‘창작 氣살리기’ 이색 프로젝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예술공간 ‘문’에 국내외 만화가 11명이 모여 하루 동안 24쪽짜리 만화를 그리는 ‘24시간 만화 프로젝트’가 27일 오후 3시부터 28일 오후 3시까지 열렸다. 시민들은 작업실을 공개해 작가들이 만화를 그리는 모습부터 밥 먹고 자는 모습까지 볼 수 있게 했다. 작가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잠도 줄여가며 작업을 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예술공간 ‘문’에 국내외 만화가 11명이 모여 하루 동안 24쪽짜리 만화를 그리는 ‘24시간 만화 프로젝트’가 27일 오후 3시부터 28일 오후 3시까지 열렸다. 시민들은 작업실을 공개해 작가들이 만화를 그리는 모습부터 밥 먹고 자는 모습까지 볼 수 있게 했다. 작가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잠도 줄여가며 작업을 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 “후루룩 쩝쩝….” 28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3가 54-41. 허름한 건물 지하에 있는 예술공간 ‘문’에 국내외 만화가와 일러스트 작가 미술가 등 11명이 모여 있었다. 왁자지껄 대화도 나누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줄 알았다. 이들이 손에 든 것은 펜이 아닌 젓가락. 책상 위에는 원고 대신 자장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이들은 “슥삭슥삭” 그림 그리는 소리 대신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며 아침 겸 점심으로 자장면 한 그릇씩 먹고 있었다. 27일 오후 3시부터 만화를 그린 이들은 이날 오후 3시까지 24쪽짜리 만화 한 편을 완성해야 했다. 제한된 제작 시간 때문에 이들은 식사도 자장면으로 간단히 때웠다. 》
○ 만화로 소통

철공소가 모여 있는 영등포구 문래동. 최근 이곳에 예술 작가들이 하나둘 모여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를 하고 있다. 이날 열린 ‘24시간 만화 프로젝트’는 만화가 11명이 모여 각자 24쪽 분량의 만화를 27일 오후 3시부터 28일 오후 3시까지 24시간 동안 완성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서울시가 조성하고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창작공간 문래예술공장에서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소통하기 위한 문화 프로젝트 중 하나. 만화를 주제로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4시간 만화 그리기는 해외 만화가들에겐 유명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미국 유명 만화가 스콧 매클라우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슬럼프에 빠져 그림 그리는 속도가 느린 만화가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자는 취지로 이 행사를 기획했다. 문래동 프로젝트는 만화가뿐만 아니라 시민을 위한 행사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만화가 전지 씨(29·여)는 “한 편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만화를 아직도 저급한 문화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 한 편의 만화를 만드는지 제작 전 과정을 공개해 만화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이들의 작업 과정부터 밥 먹고 자는 모습까지 옆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도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코너를 만들었다. ‘그림 못 그리는 사람은 괴물이라도 그리세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참가자 11명은 만화가부터 일러스트 작가, 사진작가, 미술가 등 다양한 장르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서로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자연스레 작업실 분위기는 조용하다. 썰렁함을 없애겠다며 28일 오전 1시에 문래동에 사는 뮤지션들이 작업실을 찾아와 공연을 열기도 했다.

○ “잠 안 자고 만화 그려 뭐하게?”

최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한 참가자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밥을 빨리 먹는 것은 기본이다. 시간이 없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야 했다. 입체적으로 보이기 위해 평소 캐릭터에 그림자를 많이 넣는다는 전 씨도 이날만큼은 그림자를 그리지 않았다. ‘컷’도 최대한 큼직하게 했다. 이날 24쪽짜리 만화를 완성한 사람은 5명뿐이었다.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참가자들은 모두 ‘내 얘기’를 하려 했다. ‘돈벌레’라는 만화를 그리는 아마추어 만화가 유승종 씨(24)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때 ‘슬램덩크’ ‘드래곤볼’ 같은 일본 만화에 빠진 그는 만화학과가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그는 ‘돈만 밝히는 것 아닌가’ ‘순수했던 모습은 사라진 건가’ 같은 자신의 고민을 만화에 표현하고 싶었다.

독일에서 온 카트린 바움게르트너 씨(33·여)는 잉크와 매직으로 ‘내 머릿속의 기차’라는 제목의 만화를 그렸다. 그는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주인공이 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들이 만든 작품을 다음 달 1일부터 11일까지 ‘문’에 전시할 예정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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