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충돌과 관련해 경찰이 보인 ‘무기력한 대응’의 내면에 제주지역 특유의 ‘궨당 문화’가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궨당 문화는 섬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는 제주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이기도 하다. 궨당에 잘못 보이면 제주에서 살기 힘들 정도. 추석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벌초’에 참여하지 않아 궨당의 비난을 받으면 ‘조상도 모르는 탕자’로 낙인찍힐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시위를 진압하는 제주 출신 경찰도 궨당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때문에 해군기지 공사 현장에서 충돌이 있을 때마다 경찰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충돌에 따른 인명피해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친인척, 혈연, 학연 등으로 얽혀 있어서 애초부터 강력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궨당 문화 때문에 공사 추진 등에 대한 내부 정보가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나 단체에 흘러갔을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24일 발생한 강정마을 충돌 현장에서도 궨당 문화는 여기저기서 확인됐다. 시위를 막는 경찰에 이름을 부르며 “○○야, 막지 마” 등을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름을 알 만큼 막역하다는 것. 강정마을의 한 주민(47)은 “지역사회가 좁다 보니 한 다리를 거치면 궨당이고 선후배”라며 “얼굴을 알기 때문에 이로운 점이 있지만 충돌 현장에서는 서로 난감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지휘를 맡은 송양화 서귀포경찰서장(현 제주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의 고향은 강정마을에서 불과 12km가량 떨어진 서귀포시 보목동이다. 초중고교를 서귀포시에서 나왔다. 그러나 정작 송 담당관은 시위 진압에 궨당 문화가 미친 영향에 대해 강력하게 부정했다. 송 담당관은 “제주가 좁은 지역사회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궨당을 의식하는 온정주의에 흐르면 경찰 업무를 할 수 없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궨당 ::
권당(眷黨)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주로 친족과 외척, 고종, 이종 등 친척을 두루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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