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엔 친구멘터가 있어요!

  • Array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어른에겐 말못하죠” “친구고민 듣다보면 내 문제도 해결”
고교생 말못할 고민들 상담하는 학생모임 활기

고교생에게 친구는 자신의 고민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최적의 ‘멘터’다. 오른쪽 Q&A는 경기 오산고 또래상담반 ‘포이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상담사례. 사진은 포이스의 상담교육 장면. 경기 오산고 제공
《고교생은 고민이 많다. 오르지 않는 성적과 막연한 진로만이 문제가 아니다. 엊그제 싸운 친구와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좋아하는 이성친구가 냉담하게 굴 땐 어떻게 대응할지, 나와 생각이 다른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각양각색 고민이 한 교실에 공존한다. 말 못할 고민과 걱정이 있는 학생들이 맨 먼저 찾게 되는 상담 상대는 누굴까. 부모님? 선생님? 아니다. 바로 친구다. 같은 눈높이로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읽고 가장 현실적이고 요긴한 솔루션을 제시해줄 존재는 바로 친구이기 때문. 대입 스트레스에다 다양한 고민에 시달리는 고교생에게 또래 친구야말로 최적의 ‘멘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친구들의 상담을 받아주면서 그들이 지닌 마음의 짐을 흥미롭고도 전문성 있는 방식으로 덜어주고 있는 또래 멘터들을 찾아보자.》
○전문가 뺨친다… 상담예약 받고 상담일지도 작성!



또래 멘터라 해서 친구의 푸념과 수다를 받아주는 수준의 ‘아마추어’라 생각하면 오산. 전문적인 상담교육을 받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면서 여느 심리상담가 못지않은 전문적 활동을 펼치는 또래 멘터들이 있다. 상담동아리나 교내 계발활동(CA)을 통해 ‘검증된’ 교내 멘터 자격을 얻은 고교생이 바로 그들.

서울 이화여고 2학년 김윤희 양(17·사진)은 친구들에게 ‘또도미’라고 불린다. 또도미는 ‘또래상담 도우미’의 줄임말. 교내 심리동아리의 일원인 김 양은 친구들의 각종 고민을 들어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멘터로 활동한다. 이 학교엔 김 양과 같은 또도미가 모두 8명이나 된다.

대다수 또도미의 장래희망은 심리상담가. 진로와 연관된 만큼 상담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방식부터 남다르다. 이들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포스터를 학급마다 붙여놓고 휴대전화 문자로 상담신청을 받는다. 상담일지도 기록한다. 내담자 이름, 상담 시간 및 장소, 상담 내용, 상담 소감 등을 꼼꼼히 작성하는 것. 미흡했던 점을 보완해 앞으로 더 좋은 상담을 해주기 위해서다.

김 양이 최고로 자주 듣는 고민거리는? 무엇보다 친구와의 갈등을 하소연하는 학생이 많다. 최근엔 “엄마가 내 베프(‘베스트프렌드’의 약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함께 놀지 말래. 그런데 그 친구가 이런 상황을 눈치챈 것 같아”라며 엄마와 친구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학생이 찾아오기도 했다.

“엄마와 싸우기도 싫고, 그렇다고 당사자인 친구와 의논하기도 어려워 제3자인 저를 찾아왔대요. 어머니에게 그 친구의 장점을 잘 말해서 이해시켜보라고 했는데 다행히 일이 잘 풀린 모양이에요.”(김 양)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데다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또도미들이 매주 금요일에 모여 2시간 동안 전문상담가들의 상담사례 한두 가지를 함께 공유하며 상담내용을 분석하는 이유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속마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식으로 대화했는지, 사안마다 어떤 해결책을 줬는지 등을 함께 꼼꼼히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실용적 지식과 노하우를 다음 상담에 적용한다.

김 양의 동급생 이모 양(17)은 “어른들에겐 선뜻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도 친구에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나의 성향과 처한 상황, 감정을 제일 잘 알고 이해해주기 때문인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시간과 장소를 안 가린다… 민감한 상담은 온라인 멘터로!


상담내용이 민감한 경우 멘터를 직접 만나 털어놓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학생을 위해 온라인에서 활약하는 멘터도 등장했다. 경기 오산고 또래상담반 ‘포이스(P.O.Y.S)’가 그 주인공.

총 20명인 포이스 부원들은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을 펼친다. 홈페이지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고민 글에 답변을 달아주는 일. 4개조로 나누어 게시판 글을 맡고 각각의 문의사항에 어떤 조언을 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한다. 기장(기수의 대표)이 이 의견을 종합한 뒤 최종 답변을 정리해 올리면 고민 해결이다.

포이스 부원인 2학년 홍규선 군(17·사진)은 “친구들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다 보면 내 고민까지 해결될 때가 적잖다”고 했다. 진로 문제가 특히 그렇다. ‘목표 대학에 비해 성적이 모자라다’ ‘아직 확실하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 걱정이다’ 같은 고민은 그도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

“유용한 답변을 해주려고 대학 사이트나 진로탐색 사이트를 탐색하다보면 저 자신에게도 도움이 돼요. 한번은 누군가가 친구와 갈등을 빚은 사연이 저의 상황과 비슷했는데, 좋은 조언을 해주려고 여러 해결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제 문제도 덩달아 해결이 되더라고요.”(홍 군)

○‘관상녀’를 아십니까… 기상천외한 상담기법도

독특한 도구나 방식을 이용한 상담으로 전교생 인기를 한 몸에 얻는 이색 멘터도 있다. 타로카드 점이나 사주, 손금을 봐주면서 자잘한 고민상담을 도맡는 것. 타로카드의 그림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거나 손금의 모양을 보면서 친구가 고민을 갖게 된 원인과 그에 대한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들 멘터는 웬만한 연예인 이상으로 ‘귀하신 몸’. 다른 반 친구나 후배들, 심지어는 단 한 번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던 낯선 친구까지 찾아온다.

‘관상녀’로 소문난 전북지역의 한 고교생 A 양(17)이 그 예. A 양은 중학교 때 범죄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상학에 관한 도서를 종종 읽어왔다. 친구가 고민거리를 말할 때에도 친구의 관상을 살피면서 해당 관상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행동방식과 대처요령을 일러줬더니 금세 학교 전체에 소문이 쫙 퍼졌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이성친구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여학생들이 어김없이 A 양의 방문을 두드린다. “남녀공학인 데다 한 반에 커플이 네다섯쌍 있을 만큼 많아서 그런지 연애상담 요청이 유독 많다”는 게 그의 설명.

질문도 가지각색이다. “난 왜 남자친구가 안 생기지?” “난 진지한데 그 사람은 날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이제 본격적으로 수능 공부해야 하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할까?” 실제로 A 양은 연애경험이 한 번밖에 없지만 이런 ‘관상 상담’ 덕분에 교내에선 ‘달인’으로 통한다. 다음은 A 양에게 연애상담을 받았다는 친구 박모 양(17)의 말.

“마음에 드는 남자선배가 생겨 A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고백 한 번 해볼까’ 하고 물었더니 ‘주변에 여자가 많게 생겼으니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답해주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 선배가 정말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있더라고요(웃음). 따지고 보면 A가 관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연애문제로 혼자 끙끙대느니 친구에게 털어놓는 행위 자체로도 속이 시원해지는 거죠.”

A 양은 “정말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을 풀어놓는 몇몇 친구를 제외하면 그저 하소연할 대상을 찾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라면서 “나와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들까지 나를 찾아와 남자친구와의 사적인 문제를 스스럼없이 들려주며 상담을 요청할 땐 나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땐 친구들의 고민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