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되기 싫어” 어버이날 세상 등진 노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9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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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을 앓던 노부부가 어버이날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일 오후 5시30분 경 경기도 용인시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전 모(69), 노모 씨(62.여) 부부.

이들은 아들 내외를 손자들과 함께 지방으로 여행 보낸 뒤 결국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저 세상으로 함께 떠났다.

큰아들(40.회사원)과 며느리(38.회사원), 손자 2명(초등생)과 함께 노년의 삶을 살던 이들에게 불행은 젊은 시절부터 암울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30년 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계속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왔다.

서울의 명문 고교와 명문대 법대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전 씨.

하나둘씩 법조인이 돼 활동하는 학교 친구들과 법조인이 못된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정신과적 치료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는 중증 노인성 치매까지 앓아왔다.

이 때문에 큰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직장과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간호는 늙어가는 노씨의 몫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내외가 직장에 가면 가사도우미와 함께 남편의 병수발을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던 노 씨.

하지만 병수발을 들며 정성스레 남편을 간호하던 노씨도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했다.

암세포가 몸으로 스며든 노 씨는 7개월 전 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노씨는 통원 치료를 받아야했고 우울증세까지 보여 점점 남편의 병수발을 하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악화됐다.

결국 노 씨는 함께 살던 아들 식구들을 모두 7일 오후 제주도로 여행을 보냈고, 8일 오후 '미안하다. 고마웠다'는 내용의 유서를 방에 남기고 집 베란다에 목을 맸다. 남편 전 씨도 방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부부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 형제들에게 모두 5장의 유서를 남겼다.

아들에게는 '고맙다. 미안하다. 아버지, 엄마가 같이 죽어야지 어느 하나만 죽으면 짐이 될 것이다', 며느리에게는 '고맙고 미안하다. 아들들 잘 키워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손자들에게는 '엄마.아빠와 행복해라. 사랑한다', 형제들에게는 '우리 자식들 고생했는데 잘 도와줘라'는 글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전 씨의 큰아들은 경찰에서 "여행을 안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가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유족들의 진술과 유서 내용을 토대로 지병을 앓아 온 전 씨 부부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한 후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할 방침이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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