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록도 주민이 개보수 작업을 마친 새집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주택 39동의 리모델링 작업은 올해 안으로 모두 끝날 예정이다. 소록도 주민 이남철 씨 제공 남도의 끝자락에서 어린 사슴 모양으로 물 위에 떠있는 비운의 섬 소록도(小鹿島). 3일 찾은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는 봄 냄새가 물씬 났다. 바닷가를 따라 서있는 동백과 매화는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렸다. 2년 전 완공된 소록대교를 통해 섬을 찾은 관광객들은 남녘바다에 펼쳐진 봄의 정취를 만끽했다. 한때 ‘슬픔의 땅’으로 불렸던 소록도는 평균 연령 74세의 한센인 601명이 살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정착촌 80여 곳에서 사는 한센인 1만3000명에게 소록도는 마음의 고향이다.
소록도 주민에게 올해 봄은 더욱 특별하다.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겼던 낡은 주택과 병원 등 모든 시설을 3년간 300억 원을 투입해 현대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1944년부터 소록도에서 살고 있는 최고령 주민 유득순 할머니(98)는 “너무 좋아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다”며 기뻐했다. ○ 현대화사업으로 확 달라진 소록도
소록도 중앙공원 입구에는 말끔한 5층 건물이 서 있었다. 한센인 치료와 재활을 위한 국립소록도병원 본관이다. 1층 현관은 대도시의 여느 종합병원 못지않게 산뜻하게 꾸며졌다. 105개 병상과 재활치료실 등이 있는 내부 6019m²(약 1800평) 역시 깨끗했다. 25년 전인 1986년 지어져 낙후된 병원은 최근 개보수 공사가 끝났다.
소록도 주민이 사는 주택 39동 121가구도 올해 안으로 개보수 작업이 모두 끝난다. 1935년부터 지어진 일부 움막집은 소록도가 핍박의 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념물로 남게 된다. 움막 같은 옛 벽돌집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벽이 얇은 데다 창과 창틀이 맞지 않아 틈새로 찬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고령에 장애를 앓는 주민들은 집에서 20∼30m 떨어진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소록도 지킴이 이남철 씨(62)는 “옛 집은 한겨울에 방에 얼음이 얼 정도로 허름했다”며 “지금은 호텔에 살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소록도는 2009년 3월 육지와의 거리를 좁힌 소록대교가 완공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후 24시간 왕래가 가능하고 맑은 주암호 물이 수돗물로 들어왔다. 낡은 침수로나 화장장 등 한센인의 생활을 위한 모든 시설이 보수됐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8일 달라진 소록도를 찾아 시설 현대화사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을 축하할 예정이다. ○ 편견의 땅, 역사공간으로 변신
소록도는 국립소록도병원의 모태인 소록도자혜의원이 개원한 지 100년을 맞는 2016년까지 질병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5년까지 한센인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3300m²(약 1000평) 규모의 역사박물관이 세워질 예정이다. 6600m²(약 2000평) 규모의 공원이나 기념관, 3300m²(약 1000평) 규모의 복합문화센터 건립도 추진된다. 김명호 소록도 자치회장(61)은 “한센인에 대한 핍박과 차별의 아픈 과거를 보여줄 수 있는 역사박물관이 반드시 건립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연간 새로 발견되는 한센병 환자는 10명 미만이다. 이들은 한센병이 걸렸던 것을 감춰온 국내 환자나 외국인 근로자다. 소록도병원 관계자는 “소록도 주민은 한센병이 나았으나 그 후유증에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이라며 “한국은 사실상 한센병을 완전히 정복한 통제국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앞선 한센병 치료기술을 아직 한센병이 많이 발병하는 동남아 국가에 전파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형주 소록도병원 시설담당은 “일부에서는 1970년대까지 외국 의사나 종교인들이 한국 한센인의 치료를 도운 만큼 이젠 우리가 후진국 한센병 환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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