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애 담임교사는··· ?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서술형 평가 채점은 물론 출결처리·수행평가까지
교사마다 다른 평가기준에 학부모는 알쏭달쏭···

그래픽 이고운 leegoun@donga.com
그래픽 이고운 leegoun@donga.com
《지난주 종업식이 끝나고 초등 5학년이 되는 딸이 몇 반으로 배정되었는지 알게 된 주부 이모 씨(40·서울 강남구). 휴대전화를 들어 선배엄마 다섯 명에게 전화를 돌렸다. 예비 담임교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예비 담임교사가 과거에 맡았던 반이었거나 직간접적으로 정보를 알 만한 학부모에게 묻는 것은 세 가지. ‘평가에 까다로운 편인가’ ‘출결 확인에 융통성이 있는 편인가’ ‘영재교육원이나 교내 대회 준비하는 것에 호의적인 편인가’다. 이 씨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해 동안 아이의 포트폴리오가 달라진다” 면서 “요즘은 선생님이 주도적인 결정권을 가진 것 중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아 예전보다 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마다 다른 평가기준을 둘러싼 학부모들의 고민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들어 입시는 물론 교육 전반에서 내신, 교사추천, 학교생활기록부가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이를 주관하는 교사의 힘이 커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 문제는 교사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부분에서 평가나 판단의 기준이 교사마다 다르다 보니 예기치 않게 학생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사의 평가가 상급학교 입시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초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새 학년이 되어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는 ‘복불복’”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지난해 12월엔 서울의 한 고교에서 기말고사 영어 서술형평가 채점결과를 두고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벌어졌다. 1학년 A 군은 2학기 기말고사에서 95.7점을 받았다. 내신 등급은 전체 석차 21등으로 2등급. 이 학교는 전교 20등까지를 1등급으로 구분했다.

A 군의 어머니는 “근소한 차이로 아들이 2등급으로 밀린 것은 학교가 서술형 문제의 정답을 정확하게 채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법상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를 내놓고 정답인 단어가 답안에만 들어있으면 ‘어법상 적절한 단어’가 일부 포함된 답안도 모두 만점을 줬다는 것. A 군의 어머니는 “1등급과 2등급이 1점 이하의 차이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교사가 엄정하게 채점을 하지 않아 완벽한 정답을 적은 아들이 불이익을 봤다”면서 항의했다. 학교 측은 영어교사를 불러 논의한 끝에 채점 상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일부 성적을 수정했다.

서술형평가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해부터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에서 서술형 문항을 30% 이상 출제하고 외국어고 입시에서 중학교 2, 3학년 영어내신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면서 내신 성적을 좌우할 수 있는 서술형평가의 문항과 평가기준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더욱 예민해진 것도 사실이다. 학교마다 학년별로 통일된 서술형평가의 기준을 갖추고 있지만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까다롭게 원칙을 지키는 교사’를 만나느냐, ‘납득이 가능한 범위에서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입시결과 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수행평가도 비슷한 경우. 학교마다 엄격한 평가기준을 세우지만 감점요인(△불손한 말투나 예의에 어긋난 행동 △교사가 판단해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위)이나 가점요인(△충실한 포트폴리오 △자발적인 발표)을 보면 교사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교사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출결처리도 불만의 요인이다. 최근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따라 체험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체험활동을 떠나는 학생이 크게 늘었지만, 이에 대한 출결처리 기준은 교사에 따라 다르다. 예비 초등 5학년인 딸과 중학 1학년인 아들을 지난 겨울방학 동안 미국에 보냈던 학부모 이모 씨(42·서울 서초구). 자녀는 개학식 이틀 전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미국 중서부에 쏟아진 폭설로 모든 항공편이 결항됐다. 이 씨는 부랴부랴 두 자녀의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현지에서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개학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고 알렸다. 딸의 선생님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니 출석으로 처리하겠다”고 한 반면에 아들의 선생님으로부터는 “어쨌든 무단결석”이라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상황, 다른 결과에 당혹스러워한 이 씨는 관할 구 교육청에 문의했지만 “담임교사가 재량껏 판단할 문제”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에 학교운영규정을 따져본 이 씨는 ‘지진, 폭우, 폭설, 폭풍, 해일 등 천재지변으로 결석한 경우는 출석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천재지변이었기 때문에 출석으로 처리해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아들의 교사는 “당국이 천재지변이라고 선포하지 않았다”면서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은 무단결석으로 처리됐다.

국제중이나 외고 입시에서 무단결석은 감점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한 국제중은 무단결석일수가 0일이면 ‘A’, 1∼4일이면 ‘B’, 5일 이상이면 ‘C’로 평가하고 총점 중 5%를 반영한다. 외고에서도 1단계에서 영어내신과 함께 결석은 감점 요인으로 작용된다. 반영비율은 낮지만 단 1, 2점이 소중한 지원자에겐 무시할 수 없는 점수.

서울시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이 경우 원칙적으로는 출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옳지만 일부 교사에 따라 ‘교육적인 해석’이 따를 수 있다”면서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교사마다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교내대회 수상, 교사추천제도의 평가기준을 둘러싸고 논란과 학부모의 항의가 끊이지 않자 학교마다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해 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에 지원할 학생 수십 명을 한 교실에 모이도록 했다. 1차 관찰추천 전형을 지필고사로 대체한 뒤 주제를 주고 자유형식으로 보고서를 쓰게 한 것. ‘객관성’을 담보하려다 보니 평상시 교사의 관찰을 통해 영재성이 보이는 학생을 추천하겠다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고, 사교육을 받고 지필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던 학생이 선발됐다.

서울 강남구의 일부 중학교에선 최근 모든 영어 말하기, 토론대회 같은 교내대회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해두고 있다. 누군가가 수상이나 학교 대표 추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 김모 교사(38)는 “요즘 학생과 학부모는 뭔가 기준이 모호하거나 조금이라도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는 즉시 공식적으로 대응하곤 한다”면서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못 믿으니 교사의 평가기준도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 자녀의 수행평가, 출결관리, 추천 등에서 교사와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C3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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