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국사 교과서도 좌편향]순탄치 않았던 검정과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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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향 논란 금성교과서 등 7종 검정 탈락

새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검정을 신청한 교과서는 총 13종이었고 내용조사 연구위원과 검정위원들은 출판사의 이름을 모른 채 전체를 검토했다. 검정 신청 교과서 13종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인용 방식이 불분명하거나 서술이 편향적인 사례가 훨씬 다양했다.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과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12개조를 게재하는 문제는 논란의 중심이었다. 피카소의 그림은 12명의 검정위원이 유일하게 표결을 통해 게재 허용 여부를 결정한 사안이었다. 그림 게재를 반대한 측은 그림 소재인 1950년 10∼12월 황해도 신천의 민간인 희생 사건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북한 정권은 ‘미군의 학살’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현지 좌우익 주민들 간의 충돌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군이 가지 않은 길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공산당과 싸우는 전쟁이었기에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가 공산당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이라는 점도 게재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고려됐다. 그러나 표결 결과 7 대 5로 게재 허용으로 결정됐다.

동학군의 폐정개혁안 12개조의 인용 문제는 검정위원들의 검정심사위원회 개최 전에 거치는 연구위원들의 교과서 내용조사 과정에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역사 소설 ‘동학사’의 교과서 인용은 불가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연구위원과 상대편 연구위원 간에 고성이 오고 갔다. 동학의 폐정개혁안 12개조는 역사학계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토지 균등 분배와 신분제 철폐 주장이 19세기 민중에 의해 제기됐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조사 과정에 참여했던 한 연구위원은 “동학군의 의의를 평가 절하할 의도 없이 사료의 인용을 정확히 하자는 차원에서 (인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기존 역사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와 결이 달라서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 ‘역사소설’ 표기를 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지만 이마저 지키지 않은 교과서도 있었다.

그 밖의 사례로는 북한의 인민위원회가 통치 기능을 행사했다고 추정되는 지역에 관한 지도를 게재한 교과서도 많았는데, 당시 인민위원회가 조직됐다고 해서 통치 기능을 행사한 것은 아니므로 이는 불분명한 자료라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과 달리 소련은 (이북 지역) 통치에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을 한 교과서에 대해서는 당시 소련군 장군들의 기록을 통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사 교과서 내용에 대한 이견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1919년 임시정부로 보느냐, 1948년 정부 수립으로 보느냐 하는 관점과도 맞물려 있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비록 영토를 갖지 못했지만 1919년이 대한민국의 기점이라고 인식한다. 반면 정부 수립을 중시하는 측에서는 1948년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이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대한민국의 성립 시기임을 강조해 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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