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유성운 기자, ‘탑건 스쿨’ 공군 KF-16 전술 출격 동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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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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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8배 압력… 빨래처럼 뒤틀려… 극한 고통속에 피는 ‘빨간 마후라’

《 “봉투, 챙겨가세요.” 연한 카키색의 비행장구를 착용하는 기자에게 김영우 대위(공사 50기)가 씩 웃으며 검은 봉투를 내밀었다. “초급 장교들도 처음에는 다 토하니까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조종복 명찰에는 내 이름인 ‘유성운(A)’이 새겨져 있었다. “괄호 안의 A는 뭐죠?” “혈액형입니다. 추락하게 될 경우 급히 수혈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써놓는 거죠.” ‘AB’를 달고 있는 김봉성 소령(공사 44기)이 설명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지난해 말 기자가 썼던 ‘30년 넘은 노후 전투기 41%…조종사 매년 3명꼴 추락사’라는 제목의 기사(본보 2010년 11월 19일 A10면)가 떠올랐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탑건(Top Gun) 스쿨.

공군에서는 충북 청주에 있는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를 이렇게 부른다. 공군이 자랑하는 최정예 파일럿을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1월 18일 오전 10시 공중전투훈련장(ACMI) 회의실. 비행훈련 2시간 전에 모여 사전브리핑을 들었다. 참여한 인원은 4명. 공격조 전투기 조종사 김 소령과 부조종사인 기자, 적기 역할의 수비조 전투기 조종사 지만식 소령(공사 46기)과 김 대위다.

낮 12시. 소형버스로 전투기가 대기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조종석이 높은 탓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시트에 앉아보니 좌석은 일반 여객기 이코노미석보다 훨씬 좁았다. 몸을 욱여넣어야 겨우 들어가는 정도였다.

“이륙합니다.”

동아일보 유성운 기자(왼쪽)가 지난달 18일 최정예 파일럿을 양성하는 충북 청주시의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에서 공군 전투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KF-16 전투기 부조종
사석에 탑승하고 있다. 유 기자는 이날 지면 위에서 받는 중력보다 8배 이상 높은 압력
을 견디며 45분간 실제 훈련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
동아일보 유성운 기자(왼쪽)가 지난달 18일 최정예 파일럿을 양성하는 충북 청주시의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에서 공군 전투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KF-16 전투기 부조종 사석에 탑승하고 있다. 유 기자는 이날 지면 위에서 받는 중력보다 8배 이상 높은 압력 을 견디며 45분간 실제 훈련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 제29전술개발훈련비행전대
조종석 앞자리에 앉은 김 소령의 굵고 짧은 목소리가 헬멧 속 헤드폰을 통해 들려왔다. 빠른 속도로 청주공항의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한 KF-16 전투기는 너무나도 가볍게 ‘둥실∼’ 하고 떠올랐다.

이날 훈련의 시작은 적의 소형화기를 피하기 위한 ‘전술 출항’이었다. 일반적인 출항보다 고도를 급상승해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고도가 1만 피트(약 3000m)까지 급상승했다. 귀에 통증이 느껴졌다.

태안 앞바다의 훈련지역에 도착하자 김 소령은 “G(중력가속도) 적응을 하겠다”며 전투기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5G입니다.” 5G라면 평상시 지면 위에서 받는 중력의 압력보다 5배 높은 수준이다. 뭔가 내 몸을 양쪽에서 잡고 빨래처럼 쥐어짠다. 현기증도 심해졌고, 복통이 시작됐다.

이윽고 김 소령은 “11시 방향에 적기가 나타났다”고 말해줬다. 11시 방향을 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목을 1도씩 조금씩 움직이라고 했지.’ 천천히 돌려봤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이후 김 소령의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고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전투기가 방향을 트는 순간 목은 왼쪽으로 거의 90도 각도로 꺾였다. 목을 세워보려 했지만 펴지지 않았다. 일시적인 산소부족 현상 탓에 시야는 서서히 좁아졌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내 몸은 거꾸로 처박혀 있었고 주위에는 하늘색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제 공간정위상실(SD·Spatial Disorientation) 체험 프로그램 5단계를 실시해 보겠습니다. 눈을 감아보고 느낀 것을 솔직히 말해주세요.”

눈을 감았다. 몸의 정면으로 급격한 압력이 전달됐다. 대기권 밖을 벗어나려는지 상공 위로 치솟고 있는 듯했다.

“눈을 떠 보세요.” 눈을 뜨니, 오히려 전투기는 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버티고(비행착각)였다.

“급작스러운 전투기의 이동에 따른 고도 변화를 우리 몸의 기관들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테랑 파일럿도 가끔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5차례에 걸쳐 내 오감은 마음껏 농락당했다.

이륙 45분가량이 지난 뒤 “훈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반가운 음성이 들렸다. 수평비행 상태로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적기 역할을 했던 KF-16 전투기가 다시 보였다. 섬광탄 같은 것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공중에서 불꽃 섬광이 펼쳐졌다. “적의 열 추적 미사일을 교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헬멧을 통해 들렸다.

10여 분 뒤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8.7G까지 갔었네요. 잘 참으셨습니다. 공군 장교 중에서도 8.7G까지 올라가 본 경우는 드뭅니다.” 김 소령의 설명에 뿌듯해졌다.

오후 5시. 김 소령은 다시 야간비행이 있다며 서둘러 나갔다. 영하 15도의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요란한 이착륙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힘들지 않겠느냐고 묻자 김 소령은 “이 정도는 아직까지 괜찮다”며 웃었다.

문득 파일럿 출신 작가 생텍쥐페리가 쓴 ‘야간비행’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사람은 오늘의 철야근무가 우리를 얼마나 결속시키는지 결코 알지 못할 테지.”

청주=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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