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초중고 과목별 수업시간 이번 학기 자율화했더니…

동아일보 입력 2010-09-28 03:00수정 2010-09-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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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數-國편식 현상 뚜렷… ‘예체능 축소’ 우려 현실로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인 초등학교 6학년 나래는 2학기 실과 교과서를 받아보고 기뻤다. ‘애완동물 기르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 몇 년 동안 토끼를 기르겠다고 엄마를 조른 나래는 실과 수업을 기회로 집 안에 토끼를 들여놓는 꿈을 꿨다. 그러나 2학기 첫 실과 시간에 꿈이 깨졌다. 선생님이 “실과 실습 시간을 줄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수학 수업을 늘리겠다고 했다.

나래네 학교만 이런 게 아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박영아 의원(한나라당)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아 27일 공개한 ‘학교 자율화 적용 실태 분석’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 70.1%가 수학 수업 시간을 늘렸고 42.7%는 실과 시간을 줄였다.

○ 초등부터 국영수 늘고 예체능 줄고


교과부는 지난해 4월 학교 자율화 후속 조치로 교육과정 자율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올 1학기부터 일선 학교에서 과목별 수업 시간을 20%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방침이 발표되자 교육 단체들은 학교 수업이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편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수학 이외에 국어(41.3%), 영어(32.3%), 과학(18.3%), 사회(17.1%) 같은 과목 수업 시간을 늘린 초등학교가 많았다. 반면 40%가 넘는 학교가 체육(45.3%), 실과, 미술(42%) 같은 과목은 수업 시간을 줄였다. 음악 시간을 줄인 학교도 39.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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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은 “학교 자율화 정책은 학교별로 특화된 교육을 해 학교 다양화와 공교육 강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국영수 중심의 학력 올리기로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 초등학교 교감은 “실과 시간에 배우는 내용 상당수가 창의적 재량 활동 시간 등을 통해 소화가 가능하다. 또 바느질 배우기, 국기함 만들기처럼 실제 아이들 일상과 동떨어진 내용도 많다”며 “학부모들의 사교육 수요가 수학에 많이 몰려 있어 수학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해명했다.

○ 중학교 영어, 고교 수학↑

교육과정 자율화에 참여한 학교 비율은 초등학교 98%, 중학교 61%, 고등학교 45%. 초등학교 참여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담임교사가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 자율화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상급학교 진학 부담이 늘어나는 중고교도 입시 과목 위주로 수업 시간을 늘렸다.

중학교는 영어 수업 시간을 늘린 학교(12.1%)가 가장 많았고 수학(8.2%)이 그 다음이었다. 국어는 수업 시간을 늘린 학교(3.7%)보다 줄인 학교(4.5%)가 더 많았다. 가장 많이 수업 시간을 줄인 과목은 초등학교 실과에 해당하는 기술가정(5.1%)이었다. 중학교 3.9%는 체육 수업 시간을 줄였다. 한 중학교 교사는 “앞으로 외고 입시에서 영어 내신만 반영하기 때문에 영어 수업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교는 수학 시간을 늘린 학교(14.5%)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과학(10.9%)이었다. 서울지역 한 고교 교감은 “올해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에 미적분이 포함되고 탐구영역 선택과목 비중이 커져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10.7%는 영어 시간을 늘렸고 7.5%는 국어를 늘렸다. 최다 수업 시간 감축 과목은 역시 기술가정(13.8%)이었다.

○ ‘자율화 강요’ 불만


교과부는 인제대 오세희 교수팀에 의뢰해 ‘학교 자율화 정책의 학교현장 영향 조사’도 실시했다. 오 교수팀이 교장 교감 교사 전문직 24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과정 자율화 정책 중 ‘학년·학기 단위 집중이수 확대를 통한 학습부담 경감’이 가장 낮은 평가(2.64점·5점 만점)를 받았다.

집중이수는 여러 학기에 나눠 배우던 과목을 한 학기에 몰아서 배우는 것을 뜻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본격 도입되면 집중이수제를 실시하는 학교가 지금보다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교원들은 학교 자율화 정책 효과에 대해 ‘보통’(3점)보다 떨어지는 평가(2.79점)를 내렸으며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역 및 학교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자율화’(3.91점)를 꼽았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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