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공존 시리즈’ 취재기자 10명의 바람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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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골은 너무 깊었다… 통합을 위한 희망 보았다… 공존의 씨앗 널리 퍼지길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6월 초 동아일보 21층 회의실에 10명의 기자가 모였습니다. 기자들의 가슴은 답답했습니다. 각자 다른 색의 안경을 끼고 ‘하늘은 ○○색’이라는 주장만 있는 한국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본보의 특별기획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 통합을 위한 동아일보의 제언’ 시리즈가 7월 19일부터 9월 6일까지 25회에 걸쳐 게재됐습니다. 취재팀이 석 달여 동안 붙들고 고민했던 ‘공존’이라는 가치가 그냥 기사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조그만 씨앗이 돼 소통-통합-공존의 문화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산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음은 참여한 기자들의 취재 소회입니다.》

언젠가는 병 치료되리란 믿음 생겨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토론으로 합일점을 찾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리즈를 시작했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르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고, 보기 싫은 면은 아예 인정조차 안 하려는 사람들…. 대화는 거창하게 이념과 정책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아무튼 나는 싫어! 마음대로 해’가 되기 일쑤였다. 물론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 팩트에 의해 판단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각의 틀이 정해져 있고 그것에 맞는 사실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작은 희망을 보기도 했다.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부가 드러났다고 반드시 치료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를 위해 정확한 병명을 아는 것은 필수적 과정. 멀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병도 언제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이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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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기보다 마주 보기가 첫출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집단심층면접조사(Focus Group Interview·FGI)다. 다양한 갈등의 현주소를 짚어보기 위해 마련한 FGI를 통해 일반 시민들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았다.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 세대가 다르면 침묵을 택하고, 의견이 다르면 등을 돌리는 세태 속에서 과연 더불어 살아가는 관용의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섰다. 20대 한 여대생은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인터뷰 끝나고 나면 다 같이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 조사받는 것 아니냐”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30대의 한 면접자에게 가장 신뢰하는 집단을 묻자 한참 만에 “헌혈의 집은 신뢰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앞에서 웃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럼에도 감추기보다 드러내기, 피하기보다 마주 서기가 갈등 해결의 출발이 아닌가 싶다. 이번 기획이 우리 사회가 타인과 함께 서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재명 기자

현실 개탄하는 e메일 쏟아져

취재하면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함 관련 거리 피켓 시위에서 만난 한 ‘보통 시민’은 “누구의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 시절 외환위기를 겪고 사회 진출 시기에 취업난을 겪은 ‘트라우마 세대’들의 결혼 트렌드를 취재하면서 사회가 더 닫힌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데렐라-온달은 없다’는 지금, 불확실성은 배제하고 분명한 것, 눈에 보이는 것을 좇고 있었다. 취재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왔는지 격정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고, 씁쓸한 현실을 개탄하는 e메일도 쏟아졌다. 모두 낭만적 사랑이 숨쉴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공존’을 모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과연 답이란 게 있는 것일까 숱하게 자문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발씩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분명 있었다. ‘공존’ 시리즈가 그런 작은 걸음이었기를 바란다.

조이영 기자

소통은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

프레임(틀)에 대한 기사가 나갔던 7월 20일. 기사 밑에는 3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기사 내용에 공감을 나타내는 댓글만큼이나 기사의 내용과 상관없이 특정 세력을 비난하는 댓글도 많았다. 시리즈 취지와 무관하게 댓글 공간은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의 프레임을 앞세우는 싸움의 장이 돼 있었다. 독자들에게 받은 e메일도 마찬가지였다. 격려 e메일도 많았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적어 보내준 독자도 적지 않았다. 비판의 e메일을 보내주신 독자들께 “기사를 읽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답장을 보냈다. 답신을 받은 몇몇 독자는 다시 e메일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욕설에 가까웠던 이전 것과는 달리 정제된 표현으로 자신이 느낀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많이 담고 있었다. 소통의 기본은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떠올리게 됐다. 치밀한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지만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다’는 논어의 가르침이 불통사회를 극복하는 기본원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병기 기자

다른 생각이 공존하는 ‘공론장’ 열리길

다 아는 이슈를 녹음기를 틀 듯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평소 “동아일보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진보단체도 있었기 때문에 취재가 순조로울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기우였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진보 측 인사를 접촉했지만 이들도 구체적인 영역으로 오면 취재팀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진보 정권 10년, 그리고 보수 정권 2년 반이 지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의 진자운동’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진폭이다. 진폭을 키우려는 세력 때문에 갈등이 증폭됐다. 진폭을 줄이는 노력이 없으면 모두가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 비용을 줄여 생산적인 분야로 이전시켜야 한다. 이념 경쟁의 요체는 ‘목소리의 크기’에 있지 않다. 팩트 앞에서의 겸허함에 대한 경쟁, 방향성이 아니라 구체성-실용성에 대한 경쟁이 돼야 한다. 그래야 타협도 가능하다. 최근 정부가 ‘공정’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내놨다. 공정하지 않고서야 어찌 공존이 가능할까. 서로 다른 생각이 공정하게 경쟁하며 공존하는 공론의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

곽민영 기자

나부터 이중잣대 벗고 기본으로 갈 생각

“기획기사 하나 쓴다고 세상이 뭐 달라지나” “동아일보 너희들이나 잘해라”라며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통합되고 나아가 공정한 사회가 되는 데 미약하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현실은 암울했다. 하루 17시간 가까이 일을 하지만 생활 수준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33세 가장의 인생은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중 잣대를 취재하는 순간에도 이해관계, 이념, 친분에 따라 어제 했던 말과 오늘 발언이 다른 현실이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았다.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기억도 선명하다.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란 기자의 질문에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시리즈가 끝난 이 순간에도 이번 기획기사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됐는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간혹 “공감이 간다”는 독자의 e메일에서 희망을 봤다. 나 자신부터 이중 잣대를 벗어던지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삶을 실천하려고 한다.

김윤종 기자

양극화 해소 작은 정책에서부터 이뤄져야

시리즈는 사회의 분열된 현장에서 시작해 분열의 원인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면서 끝났다. 기자는 뉴스(news)를 취재한다. 그렇지만 이번에 쓴 기사들은 뉴스가 아니다. 이념 대립, 빈부 격차, 세대 갈등, 승자 독식 등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 아닌가. 하지만 막상 취재에 앞서 지난 뉴스를 검색해보니 정작 기사로 다뤄진 적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새로운 뉴스를 찾아다니는 동안 오래된 뉴스는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우리 사회는 양 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다. 벌어지는 간극을 좁히는 대신에 끼리끼리 담장을 쌓고 산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불안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은 분노한다.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서로서로 높이 담장을 쌓는 한 우리 사회는 분열을 극복할 수 없다. 사회 통합은 이념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양극화를 해소하는 미시 정책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우경임 기자

정치권-엘리트층이 상생 모범 보였으면

‘조손(祖孫)가정’ 기사가 나간 이후 여러 통의 e메일을 받았다. 기사에 나온 최성철 할아버지(가명) 가족을 돕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직업이 의사라고 밝힌 한 독자는 학원에 가고 싶다는 손자를 꼭 후원하겠다고 했다. 한 중소기업 사원은 회사 여직원들과 조금씩 돈을 모아 매달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경남의 한 회사원도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에 희망의 ‘공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것 같아 기뻤다. 사실 서민들은 이미 공존해왔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현장에는 힘세고 돈 많은 사람보다는 자신도 넉넉지 않은 처지의 서민이 많다. 반면 이득을 위해 ‘벼랑 끝 싸움’을 하는 사람은 대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다. 그들이 나와 생각이 다른, 나와 위치가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을 실천할 때이다. 좌와 우, 여와 야로 갈려 극한으로 대립하는 정치권과 사회 각층의 엘리트들이 상생의 모범을 보인다면 우리 사회는 선진국으로 가는 성장 동력을 얻을 것이다.

민병선 기자

“해보기나 했어”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거짓말과 위장전입, 투기 혐의로 국회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현대판 계급 사다리의 실태를 보여줬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도 지탄의 대상이 됐다. 공존을 이야기할 때 “이것 봐, 이렇게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한 사회에서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어”라는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국내 인문학 분야의 독보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의 키워드로 ‘공정한 사회’를 내걸었다. 한국 사회에 불공정하고 불의한 부분이 여전히 많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작은 위안으로 삼고 싶다. 한국 사회의 물질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던 주역 중 한 명인 정주영 회장의 “해보기나 했어”라는 한마디를 이제 정신적 성취를 위한 제언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독자 여러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정세진 기자

언론이 공론장 충분히 제시했는지 반성

시리즈가 끝나고 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한국의 현실’만 보여줬을 뿐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또 언론의 역할 중 하나가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인데 대한민국 언론이 그동안 그런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혹시 갈등을 증폭시켰던 적은 없는지…. 나부터 반성해본다. ‘갈등 사회’가 하루아침에 ‘공존 사회’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작은 실천, 작은 공감이 모이고 쌓여야 가능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대해 낙관하는 편이다. 한때 우리 사회에선 남녀 출생비 차이가 문제였다. 그때도 남아선호사상이라는 ‘문화’와 ‘의식’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자연 성비(性比)로 돌아섰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 사회는 갈등과잉이지만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본보가 제안한 ‘공존 키워드’가 작은 물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10년 뒤 한국 사회는 어디쯤 가 있을까.

공종식 기자·특별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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