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진주 아빠’ 투신 자살… 가나 출신 아내 곁으로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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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도 못치르고 한줌 재로… 엄마 닮은 3남매 큰절 배웅
2008년 7월 KBS 휴먼다큐 ‘인간극장’에 출연한 ‘흑진주 아빠’ 황정의 씨(오른쪽)와 세 남매. 사진 제공 KBS
어려운 형편으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8일 부산 태종대에서 몸을 던진 ‘흑진주 아빠’ 황정의 씨(40)의 유골은 9일 오후 8시경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납골당에 쓸쓸히 도착했다. 지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려간 부산에서 돌아오지 못할 길을 택한 지 하루 만이다. 태종대 절벽 아래 검푸른 바다에서 그는 사별한 아내의 얼굴이라도 보았을까.

아프리카 가나 출신 엄마를 닮은 세 남매 도담이(12·여), 용연이(11), 성연이(10)는 아빠의 사고 소식을 듣고 8일 오후 급하게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첫째 도담이의 눈에 눈물이 간혹 맺혔을 뿐 아빠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 용연이와 성연이에게는 먼 길을 오가며 쌓인 여독(旅毒)이 더 힘들었다. 아빠가 누워있는 관이 시커먼 화로 속으로 들어갈 때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 지켜보는 어른들이 더 가슴 아파했다.

황 씨는 원양어선 타던 시절 잠시 들렀던 가나에서 천생 배필인 로즈몬드 사키 씨를 만나 1997년 결혼했다. 다섯 식구는 행복했다. 하지만 2008년 4월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뜰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병원에서는 아내의 사인(死因)을 ‘내출혈’이라고 했다. 과로하면 생기기 쉬운 병이라고 했다.

아내와 사별한 후 황 씨는 아이들을 엄하게 키우기 시작했다. 엄마 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고 씩씩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처받았다. 짓궂은 학교 친구들은 세 남매를 ‘흑진주’라고 부르는 대신 ‘토인’, ‘깜신’이라고 놀려댔다. 울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다독이면서도 엄마 없는 아이들 마음을 보듬어줄 수 없는 황 씨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일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현실도 견디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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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황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황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을 줬다. 아내를 마음에 묻을 때부터 황 씨를 도와줬던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목사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일했던 황 씨에게 부산은 고향 같은 곳이었을 것”이라며 “그곳을 찾아갔다면 몸도 마음도 더욱 힘들어졌다는 뜻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낮술에 취한 황 씨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짧은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모든 죄책감을 혼자서 끌어안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황 씨 친척들 중 한 집이 당분간 세 남매를 맡기로 했다. 내년 초 지구촌사랑나눔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국제다문화학교’를 개교하면 아이들을 이 학교 기숙사로 보내 공부시킬 예정이다. 황 씨의 유해가 저녁 늦게 도착한 납골당은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아내의 유골함 옆에 황 씨의 유골함이 놓였다. 저승에서 다시 손을 잡은 엄마 아빠에게 이승에 있는 세 남매가 큰절을 올렸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에선 눈물샘이 터졌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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