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40년 사역 마치고 은퇴하는 전광표 구세군 사령관

동아일보 입력 2010-09-06 03:00수정 2010-09-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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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수록 펄펄 끓는 자선냄비를 통해 희망을 봐요” “누나, 기도가 뭐야.”
“이렇게 잠시 눈 감고 묵념하면 돼.”
“얼마나?”
“음, 10초 정도.”

26일 구세군 현역에서 은퇴하는 전광표 구세군 사령관은 “영적인 선교와 사회봉사에 적극 나설 구세군을 앞으로도 격려해 달라”며 “아들은 물론이고 며느리까지 ‘군’에 장기 복무해 제대로 못 모신 부모님께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구세군
1953년 충남 논산시 연산면. 까까머리의 깡마른 중학 1학년생은 난생 처음 온 ‘예배당’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네 살 위 누나에게 물었다. 소년은 누나 몰래 이곳에 오면 누나가 놀라기도 하고 좋아할 것 같아 밤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한두 번 지나친 교회와도 다르고, 목사님(담임 사관)은 군복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로부터 16년 뒤 소년은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2005년에는 한국 구세군의 총책임자인 사령관이 됐고 26일 5년여의 임기를 마치고 구세군 현역에서 은퇴한다. 그가 전광표 구세군 사령관(69)이다. 그를 2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구세군빌딩에서 만났다. 전 사령관과 결혼한 뒤 40년간 구세군 사관으로 지낸 동갑내기 부인 유성자 여성사업총재도 자리를 함께했다.

● 소년, 구세군 사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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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구세군 교회에 처음 갔던 소년은 1969년 3월 결혼 뒤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하지만 누나는 그의 곁에 없었다.

“하늘나라에 계시죠. 지병이 있었는데 (내가)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걸 못 봤어요. 신앙과 삶에서 어린 내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50여 년 전 추억을 더듬던 그는 “두 조카도 사관으로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관학교를 나온 뒤 그는 서울 서대문구 천연 영문(營門)의 담임 사관이 됐다. 영문은 다른 개신교단의 교회이고 담임 사관은 목사에 해당한다. 서민은 물론 목회자도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다. 그는 첫 부임지에서 큰아들을 등에 업은 부인과 함께 서민아파트의 문을 두드리며 선교를 시작했다.

“요즘과 비교할 때 구세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기였죠. 제복을 입은 부부가 젖먹이를 데리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니 이상한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났죠.(웃음) 전임자가 나이가 많은 사관이었는데 그분은 거리에서 구세군을 알리기 위해 북을 치며 노방전도(路傍傳道)를 했어요.”

시간이 흘러 구세군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선교 방식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영혼 구제’를 위한 선배 사관들의 열정은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자선냄비의 법칙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조셉 바아 사관이 첫 종을 울린 뒤 자선냄비는 구세군의 상징이 됐다. 첫해 모금 당시 848환(현재 가치로 약 850만 원)이었던 모금액이 지난해에는 37억 원에 이르렀다.

그는 40년간 자선냄비를 통해 변화하지 않는 구세군 정신과 또 변화하는 사회의 얼굴을 함께 지켜봤다고 말했다.

“자선냄비 모금 활동은 2인 1조로 움직입니다. 사관생도 초년병 시절 모금이 끝난 뒤 선임자가 없어 혼자서 자선냄비를 들고 왔더니 난리가 났어요. 자선냄비는 그 어떤 경우에도 혼자 들고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데 그걸 몰랐던 겁니다. 자선냄비에는 큰 자물쇠와 좁은 구멍밖에 없지만 어떤 의문이나 의혹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거죠. 그게 자선냄비입니다.”

그가 경험으로 체득한 자선냄비의 법칙이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어른 10명 중 8, 9명은 아이들의 손에 돈을 쥐여 기부하도록 한다. 2000년 이전에는 날씨가 전날보다 춥거나 눈이 오면 모금액이 올라갔다. 최근에는 차량 이용이 많아지면서 거리를 걷는 행인들이 적어져 이 날씨 법칙은 안 맞기도 한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울 때는 모금액이 오히려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금융위기 때 모금액이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자선냄비는 펄펄 끓었어요.’ 그걸 보면서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우리의 힘과 희망이란 글자를 발견했습니다.”

익명의 고액 기부자가 늘어난 것도 변화다. 그는 “공개할 수는 없지만 한 의사는 매년 고액의 수표 여러 장을 1000원짜리로 감싸 자선냄비에 넣는다”면서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은 모르게 하는 자선냄비 천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외환위기때나 2년 전 금융위기때 거리 모금액 오히려 늘어 교회의 대형화보다는 소외된 이웃과의 나눔이 더 많아져야”

● 구세군 인생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71년부터 40년간 구세군으로 활동한 전광표 사령관과 부인 유성자 구세군 여성사업총재(왼쪽). 사진 제공 구세군
그는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08년 10월 열린 구세군 선교 100주년 행사와 한국을 거쳐 간 외국인 사관 초청 행사를 꼽았다.

“행사에 참석한 원로 여사관이 갑자기 품에서 빛바랜 태극기를 꺼냈습니다. 한국에 선교사로 왔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100년 된 태극기였습니다. 2대에 결쳐 한국을 기억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던 거죠.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더 보관할 수 없으니 맡긴다’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 태극기는 지금 구세군 박물관에 있습니다.”

1971년 사관학교를 졸업할 당시 그의 기도는 “좋은 사관, 훌륭한 사관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관이 좋은 사관인지 물었다. 그는 “주님이 원하는 뜻대로 일하는 구세군”이라고 답했다. 다시 그에게 스스로 구세군 인생을 평가해 달라고 했다. 전 사령관은 웃으면서 “뒤돌아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도 부족한 점이 많았겠죠. 보통이나 중간, 그러면 50점”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 총재가 거들었다.

“구세군으로는 인간이니 100점은 말이 안 되고 95점, 남편으로는 80점입니다. 일에 시달려서 그런지 몰라도 집에서는 좀 찬 편이에요.”

구세군은 부부가 결혼한 뒤 같이 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이후 함께 활동하도록 돼 있다. 유 총재는 “사령관을 만났을 때 이미 구세군으로 평생 살겠다고 결심한 상태라 두 번째 데이트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귀다 한 해 뒤 결혼했다”며 “24시간 거의 함께 지내니 일거수일투족을 너무 잘 아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했다.

2007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지낸 전 사령관은 구세군을 포함한 개신교계 전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구세군 사역의 두 축은 영혼구제와 사회구제활동인데 ‘마음은 하나님에게,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모토에 충실했다고 자부합니다. 또 어떤 면에서 사회활동이 더 부각된 면이 있습니다. 다른 교단의 일은 언급하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교회의 대형화보다는 소외된 이웃과의 나눔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은퇴라지만 현직에서 물러날 뿐이지 기도와 봉사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평생 간직해온 마음속의 성경 구절을 꼽았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셨으니.”(마태복음 22장 37∼38절)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구세군::

영국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1865년 영국 런던의 슬럼가에서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구제(救濟)하기 위해 ‘기독교선교회’를 창설한 것이 구세군의 출발점이다. 1878년에는 더욱 강력한 활동을 위해 명칭을 구세군(The Salvation Army)으로 바꾸고 조직을 군대식으로 만든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구세군은 세계 12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각국의 구세군은 역사와 신자 수 등에 따라 군국과 준(準)군국으로 구별된다. 한국 구세군은 군국으로 인정받고 있고 사령관 아래 9명의 지방장관을 두고 있다. 각 군국의 최고지도자는 사령관으로 불리고, 계급으로는 통상적으로 부장(副將)이 된다. 구세군 성직자는 사관 호칭을 쓰며, 그 계급은 부위-정위-참령-부정령-정령-부장으로 올라간다. 세례를 받은 평신자는 하사관인데 부교와 정교로 구분한다. 한국 구세군은 10만여 명의 신자에 274개 영문이 있고, 1500여 개의 전문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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