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의 용산… 아파트 급매물 쏟아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9일 03시 00분


31조 원 재개발사업 무산 위기 후폭풍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사업지인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아파트단지에는 개발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페인트로 쓴 대형 문구가 여기 저기 눈에 띄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박상훈 인턴기자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용산국제업무단지 개발사업지인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아파트단지에는 개발에 반대하는 현수막과 페인트로 쓴 대형 문구가 여기 저기 눈에 띄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박상훈 인턴기자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개발사업을 하는 시행사 내부의 의견 정리도 안 되는데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나. 사업이 지연될수록 은행대출을 받아 이곳에 집을 산 사람들은 비용이 늘어나 걱정이 태산이다.”

사업비 31조 원 규모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무산 위기에 놓이자 사업지역인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가격까지 하락하는 바람에 일부 주민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지난주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이사회는 사업순항 여부를 판가름하는 갈림길로 비쳤다. 그러나 사업자금 조달 방안을 놓고 드림허브 출자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업 자체가 기로에 놓이게 됐다.

○ 사업 안갯속… 주민은 양분

6일 드림허브 이사회 결렬은 개발지역인 서부이촌동뿐만 아니라 인근 용산역세권 일대 부동산시장까지 뒤흔들었다. 이 지역 인근에 지어지는 아파트와 상가는 모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호재로 내세워 분양했기 때문에 사업이 무산된다면 가격 폭락이 불가피하다. 이 지역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개발지역 안에 있는 A아파트는 사업이 위기에 놓이자 올해 초까지 9억 원이었던 시세가 7억5000만 원까지 떨어졌다. 한강로3가에 있는 W아파트 가격도 연초 최고 9억5000만 원에서 6월 이후 9억 원 밑으로 하락했다. 한강로1가의 G부동산 관계자는 “인근 주민들이 사업 무산에 따른 시세 하락을 우려해 급매물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 결렬 이전에도 서부이촌동 2000여 가구는 2007년 8월 서울시가 이주대책기준일 공고를 내고 이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뒤부터 개발사업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공고일을 기준으로 이전, 이후 소유자들이 받는 보상금액에 차이가 있고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데다 이사 가는 대신 그대로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이 있는 등 이해관계가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서부이촌동에는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개수만 11개다. 이곳 아파트 단지에는 서울시와 시행사인 드림허브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즐비하게 내걸려 있다. 주변 지역도 슬럼가로 변했다. 용산역 철도정비창 앞에 있던 공장들이 떠나면서 식당이나 상가를 찾는 손님이 줄면서 인근 상권이 무너졌다. 한 공인중개사는 “3년 동안 매달 80만 원 하는 월세를 내고 있지만 매매 거래를 단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며 “개발사업이 끝나면 상가 입주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문만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김모 씨(64)는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6년밖에 안 된 새 아파트여서 허물 이유가 없는데 일방적으로 내쫓으려 한다”며 “사업이 무산돼야만 주민들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이사회 결렬은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에 찬성하는 최모 씨(66)는 “부동산경기가 좋을 때도 집을 팔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했다”며 “그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묶어둔 만큼 드림허브가 계획대로 사업을 이행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이 무산되면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서울시와 시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40대의 한 주민은 “그동안 입은 피해도 막심했는데 만약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면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왜 이 지경까지 왔나

개발지역에 속하는 철도정비창 땅의 소유주인 코레일과 드림허브 간 갈등은 드림허브가 3월 코레일에 땅값의 일부인 7010억 원을 내지 못하면서 깊어졌다. 코레일 측은 땅값 조달방안을 요구했지만 출자자들 간에 뾰족한 묘안이 나오지 못했다. 드림허브 출자자는 총 30개로 지분은 △코레일 25% △롯데관광개발 15.1% △KB자산운용 10% △삼성물산 6.4% 등이다.

출자자 중 일부는 건설사들이 지급보증을 서고 대출을 받는 식으로 자금을 마련하자고 요구했지만 건설사들이 반대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6일 이사회에서 출자자들이 한발씩 양보하며 건설사들의 지급보증 규모를 낮추고 땅값 분납이자 납부연기 등의 중재안을 협의했지만 건설사들은 지급보증을 끝내 거부했다.

건설사들의 강경한 태도는 부동산 침체기 때 지급보증에 나선다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해 들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확대되면서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관행적으로 서던 지급보증을 그만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증권사 등 다른 출자자들은 지급보증을 설 수 없다는 방침이다.

일단 드림허브가 금융회사에 이자를 내야 하는 9월 17일까지 시간 여유가 있긴 하지만 코레일 측이 땅값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드림허브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코레일이 사업자를 재선정하면 이미 1조 원을 투입한 드림허브는 공중분해 되고 사업 지연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지역주민의 피해는 물론이고 개발사업을 중심으로 펼치려던 광역교통망 확충과 한강 국제여객선터미널 사업도 어려워져 더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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