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고 화려하던 ‘스펙’ 줄줄이 “삭제… 기재불가…” 입시 당락 관건 학생부, 이젠 오로지 “교내수상 실적”
《학교생활기록부가 입시의 핵으로 떠올랐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학생부에 올림피아드, 경시대회, 자격·인증 취득상황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올해 대입부터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공인어학실적이나 교과 관련 입상성적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학생부가 입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변수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부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또
학생부를 보완하는 장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특목고 준비생이라면 앞으로 학생부를
어떻게 점검해야 할까? 대입 입학사정관전형에서 중요한 평가요소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을 십분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 두 가지 궁금증에 대해 C1,2면에 걸쳐 심층적으로 알아본다.》
서울지역 외국어고나 자립형사립고를 목표로 하는 중학교 3학년 A 군(15·서울 강남구). A 군은 중1 때부터 목표를 향한 ‘스펙’을 쌓아왔다. 장차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인 A 군은 1, 2학년 때 교내외 영어, 국어 관련 대회에 적극 참가하며 수상실적을 쌓았다. A 군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내 영어말하기대회, 과학탐구경진대회, 독서논술대회를 비롯해 한국수학올림피아드, 국제영어학력평가대회(IET), 구청 주최 국어토론대회, 교육청 주최 영어스피치대회 등 수상실적이 빼곡하다. 또 일부 자사고 진학에 ‘필수 스펙’으로 통하는 한국사검정시험, 국어능력인증시험, 토플의 높은 점수가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A 군은 당혹스러움에 직면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학교생활기록부에 각종 올림피아드, 경시대회, 자격·인증 취득상황을 기재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이 같은 실적을 학생부에 담을 수 없게 된 것이다.
A 군이 올해 자사고에 지원할 때 제출하는 학생부에는 1, 2학년 때 기록된 수상실적도 모두 사라진다. A 군의 어머니 이모 씨(40)는 “교과와 관련된 수상실적을 모두 지우면 특목고, 자사고 입시에 반영되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서 “앞으론 교내 상을 받는 것이 예전 교외 상처럼 치열해지고 교육청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급에 들어가기 위해 또 다른 사교육이 유발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특목고, 자사고 진학을 목표로 교과 관련 스펙을 쌓아온 적잖은 중3 학생과 학부모는 허탈해한다. 교과 관련 외부 수상이 학생부에서 사라진 상태에서 각 학교가 어떻게 우수한 학생을 뽑을지, 학생부에 남은 항목 중 유의미하게 평가될 항목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자사고, 특목고 진학을 목표로 한 실제 학생들의 학생부를 점검해 어떤 항목이 앞으로 강화되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전문가에게 긴급진단을 받았다.
A 군의 학생부에서 남게 될 사항은 교내 수상 실적인 △교과우수상 △영어말하기 대회(장려상) △과학탐구경진대회(동상) △독서논술대회(3위) △독서기록장대회(은상) △교훈 실천상 뿐이다. A 군은 “국가기관(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인하는 한국사검정시험은 올릴 수 있지 않느냐”는 반응.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부에는 입력할 수 없다. 2학년 때 참가했던 구청, 교육청 주최 대회에도 희망을 걸어보지만 ‘교과와 관계된 것은 정부가 후원하는 교육장, 교육감, 정부부처 장관상이라도 기록할 수 없다’는 방침에 따라 기재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A 군이 주목할 것은 각종 교내 수상실적과 1, 2학년 때 받았던 ‘교훈 실천상’이다. 이 상은 교훈에 맞게 생활한 학생들을 반 친구들의 투표와 교사의 추천으로 선발한다. 한 학기에 학급당 1명에게만 주는 상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임성호 하늘교육 기획이사는 “받기 어려운 교내 상을 받은 실적이나, 수상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관심 분야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면서 꿈을 접지 않았던 실적이 가장 돋보일 것”이라면서 “이전까지 교내 상을 소홀하게 생각했던 학생과 학부모라도 해당 상의 권위, 전체 참여자 수 가운데 수상자의 수 등을 꼼꼼히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중3 B 군(15·서울 양천구 목동)은 수차례 수학, 과학 분야 교내외 대회에 참가해 수상했다. 중1 때부터 교내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서 각각 금상, 2등상을 받았고 한국수학경시대회(KMC)에서 금상, 전국영어수학학력경시대회에서 수학 부문 은상,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중등부 1차 장려상을 수상했다. B 군은 2학년 때 교육청 영재교육원을 수료하기도 했다.
하지만 B 군의 교외 경시대회 스펙은 모두 사라진다. 2011학년도부터 과학고 입시는 입학사정관이 수험생이 낸 자료를 바탕으로 면접을 거쳐 뽑는 ‘자기주도학습 전형’과 과학 캠프 참가자를 평가해 선발하는 ‘과학창의성 전형’으로 나뉘는데, 경시대회 성적은 전형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장범 타임교육 특목입시연구소장은 “예전엔 올림피아드 수상자면 과학고에 합격한다는 공식이 성립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면서 “두 전형 모두 면접 또는 과학캠프 과정에서 심층평가가 이뤄지므로 스펙을 평가요소에 넣지 않더라도 학생의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과제수행능력을 종합적이고 다면적으로 측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은 중학교 교장의 추천을 받은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기 때문에 교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항과 교육청 영재교육원 등을 수료한 사항을 중요한 평가요소로 삼을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B 군은 앞으로 최상위권의 수학, 과학 내신 성적을 유지하면서 교내 경시대회를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하지만… 면접-자기소개서엔 ‘수상관련 경험’ 밝힐 여지
그렇다면 이런 학생부의 변화에 따라 지금껏 쌓아온 스펙은 무용지물이 되는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에 관심이 있고 대학에서 경제, 회계를 전공할 계획인 자사고 지원자를 생각해보자. 임 이사는 “학생부에 대회 수상실적을 적시할 순 없지만 자기소개서나 면접 등에서 ‘중학교 1, 2학년 때 수학 관련 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수학과 다른 재미를 느꼈고 수학적인 관심이 높아졌다. 그동안 풀어본 심화 수학문제를 꼽아보니 600문제 가량되었다’는 식으로 관심 분야를 피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고 정철화 교감은 “학생의 우수성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학생부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자기소개서나 면접이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드러낼 출구가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어떤 제약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 교감은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인데 관심 수준에 그쳤는지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학생부 기록 외에 가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4월 말쯤 구체적인 입시요강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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