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손자 키운후 건강 나빠졌다”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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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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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조손가정 할머니 - 할아버지 3110명 설문

전남 구례군 구례읍 이길례 할머니(가명·82)는 10년 전부터 월 7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중학생 손자(13)를 홀로 키우고 있다. 이 할머니는 사춘기에 접어든 손자의 교육이나 생활지도가 고민거리다. 양영숙 구례군 아동담당은 “외환위기 이후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키우는 조손(祖孫)가정이 늘고 있지만 조부모와 손자손녀 간 세대차로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50여 m²(약 16평) 크기의 낡은 한옥. 방 두 개, 부엌 하나인 좁은 집에서 김기만 할아버지(가명·76)와 손자손녀 3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13년 전부터 혼자 손자손녀를 키우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6년 전 심혈관 질환으로 수술까지 받아 거동이 불편하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 한 달에 60만 원 정도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으로만 생활하고 있다.

손자손녀를 키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10명 중 3명은 손자손녀 양육 문제를 주변에 털어놓거나 조언을 받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10명 중 7명은 손자손녀를 맡은 이후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도와 목포대 아동학과가 24일 내놓은 ‘조손가정 심층실태 및 복지요구’ 설문 조사 결과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8월부터 5개월 동안 전남지역 조부모 311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조부모들은 손자손녀를 키우는 데 어려운 점으로 돈 때문에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것과 학교 공부 지도가 어려운 것,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꼽았다.

손자손녀 문제로 속상할 때 대응 방법을 묻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의 35.6%(1100명)는 ‘혼자 울거나 참는다’고 답했다. 반면 ‘손자손녀와 대화를 해서 문제를 푼다’는 응답은 23.0%(710명)에 그쳤다. 정백화 전남도 가족문화담당은 “조부모들은 힘든 형편이나 집안 문제를 혼자서 끙끙 앓고 외부에 말하기를 꺼려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손자손녀 양육으로 건강을 해치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조부모도 많았다. 손자손녀 양육 이후 생활 변화를 묻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의 71.5%인 2205명은 ‘건강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또 97.2%(3019명)는 ‘양육비가 부담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혜정 목포대 아동학과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 손자손녀를 양육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나왔다”며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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