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은행 前-現지점장 끼고 200억 대출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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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업자, 유령회사 차려 기업대출로 위장
단순사고로 내사종결… 명의 대여자 고발로 들통

유령회사를 차린 뒤 전현직 은행 지점장 등을 동원해 200억 원대 대출사기를 벌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A은행 사당역 지점에서 200억 원대 부정대출을 받아 가로챈 인테리어업자 정모 씨(50) 등 16명을 횡령, 배임,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정 씨와 전현직 지점장 등 1,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대규모 펜션단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던 정 씨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자 자신의 개인대출로는 한계가 있어 가짜 기업을 만들어 기업대출을 받기로 했다. 기업대출을 이용하면 개인대출보다 돈의 용처에 대해 의심을 덜 받을 뿐만 아니라 대출한도를 10∼20% 늘릴 수 있기 때문. 정 씨는 친인척과 지인의 명의를 빌리고 문서를 위조해 ‘D건설’, ‘S이노베이션’ 등의 유령회사를 만들었다.

은행의 기업대출 심사를 거쳐야 했지만 전직 지점장 출신이 도와줘 무난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은행 지점장을 지낸 B 씨는 각종 문서위조 등 기업대출로 위장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중개인 역할을 자처하며 현직 지점장(2008년 당시)까지 소개해 줬다. 정 씨는 명의를 빌려줄 사람을 구한 뒤 은행을 찾아가 현직 지점장을 만나기만 하면 됐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정 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수차례에 걸쳐 손쉽게 200억 원대의 거액을 대출한 뒤 대부분을 개인적인 용도로 쓰고 일부는 전현직 지점장과 명의대여자 등에게 나눠준 것으로 알려졌다.

A은행은 지난해 이들의 대출에 대해 의혹을 갖고 내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은행은 이들이 유령회사를 동원해 거액을 대출했다는 부정대출의 전모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채 국제적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단순 대출 펑크로 판단했다. 금융 시장이 악화됨에 따라 기업들이 돈을 갚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으로 오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 측은 관련자 한 명을 정직 처분하고 나머지는 감봉 조치를 취하는 선에서 내사를 종결했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지난해 말 정 씨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관련자가 서울 서부경찰서에 정 씨를 고발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경찰은 두 달여의 조사 끝에 대출사기 전모를 밝혀냈다. 19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경찰은 정 씨와 전현직 지점장 사이에 얼마의 돈이 오갔는지 수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A은행은 “나름대로 조사를 거쳐 충분한 징계를 내렸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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