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해요/1부]<4>아빠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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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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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아빠 김동석 씨, 안식휴가 ‘육아 도전기’
“함께 부대낀 한달… 아이가 묻더군요, 한명만 돈벌면 안되냐고”

밥 챙기랴… 학원 보내랴…
종일 아이에 신경쓰느라…말이 안식이지 ‘전쟁’

주말 외부약속 엄두 못내고
별렀던 대학원 휴학했지만 난 여전히 미안한 아빠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헬스케어 전문 PR컨설팅회사 엔자임의 공동대표 김동석 씨(41)는 한 달간의 안식휴가를 마치고 1일 회사에 복귀했다. 말이 안식이지, 한 달간 딸 가현이(7)의 ‘엄마’ 역할을 하는 건 휴식이 아니었다. 물론 아이 돌보는 게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지만….

김 씨는 2006년 엔자임에 합류했다. 당시 직원 4명에 불과하던 회사는 4년 만에 임직원 30여 명으로 늘었다. 밤낮없이 일한 덕분에 지난해와 올해 초 잇달아 한국PR대상과 아시아PR대상을 수상하는 등 PR업계에서 꽤 유명한 기업이 됐다.

회사는 성장했지만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빠일 뿐이다. 대기업 부장인 엄마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김 씨의 큰어머니가 도맡아 키웠다. 김 씨 부부가 아이와 있는 시간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48시간이 전부였다.

홍보대행사 엔자임의 공동대표 김동석 씨가 2일 출근하기 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집에서 딸 가현이와 놀고 있다. 김 씨는 사진
촬영 후 아이를 인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을 서둘렀다. 김 씨의 아내가 1시간 먼저 출근하기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것은 김 씨의 일이다. 이훈구 기자
홍보대행사 엔자임의 공동대표 김동석 씨가 2일 출근하기 전 서울 강북구 우이동 집에서 딸 가현이와 놀고 있다. 김 씨는 사진 촬영 후 아이를 인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을 서둘렀다. 김 씨의 아내가 1시간 먼저 출근하기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것은 김 씨의 일이다. 이훈구 기자
“딸이 말을 배울 때였어요. 요일을 쭉 말하는데, 월요일 화요일 순으로 말하지 않았어요. 금요일, 토요일 순서로 외더군요. 특이하다며 웃었지만 내심 아이가 안쓰러웠죠.”

김 씨의 아내는 아이를 낳은 뒤에도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3년 전에는 부득이하게 6개월간 휴직을 해야 했다. 가현이가 한창 말을 배워야 할 나이가 됐는데도, 그 속도가 너무 더뎠기 때문이다. 부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부모의 역할을 못해서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결국 아이 치료가 끝날 때까지 엄마가 옆에서 돌봐야 했다.

의외로 이 6개월의 기간은 평온했다. 집안이 안정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 씨는 아내에게 “둘 중 한 명이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며 넌지시 물어봤다. 아내는 일을 계속하고 싶은 눈치였다.

“만약 아내가 전업주부였다면 육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을 거예요. 하지만 둘 다 힘들게 일하니 ‘네 책임이다’라는 식의 공방은 의미가 없었어요. 내가 육아를 도우면 아내가 십수 년간 해 왔던 자기 일을 포기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나 여전히 회사 일은 많았다. 김 씨는 딸의 자는 얼굴을 보며 출근했고, 퇴근한 후에도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내의 육아를 돕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와 큰할머니의 품에만 안겼다.

“그때는 섭섭한 마음이 강했어요. 다른 집 딸들은 아빠를 더 따른다는데….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느라 그런 걸 어린애가 알아줄 리도 없고, 답답했지만 어쩌겠어요? 집안에서 아빠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 씨가 육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게 이때부터다. 주말만큼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결심도 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주말 골프 약속이 많다. 그러나 김 씨는 골프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 대신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미술전시회나 체험여행 같은 주말 일정을 챙겼다.

아이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았다. 김 씨는 오래전부터 의료경영대학원을 준비해 왔었다. 2년 전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수업은 대부분 토요일에 있었다. 다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었다. 학교냐 아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했다. 결국 김 씨는 두 학기를 마치고 휴학계를 냈다.

한 달 전 안식휴가를 받았을 때 김 씨는 며칠이라도 국내를 떠나 홀가분하게 쉬려고 했었다. 이번에도 아이가 맘에 걸렸다. 엄마들이 왜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빠도 엄마만큼 힘들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김 씨는 고민 끝에 해외여행 대신 ‘육아체험’을 선택했다.

아이 돌보기는 쉽지 않았다.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출근하는 아내를 도왔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끝낼 쯤 딸아이를 깨웠다. 아내가 출근하면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렀다. 아침식사를 할 때도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오전 9시까지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나면 약간의 ‘자유’가 생겼다. 유치원이 끝날 때까지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 수업이 끝나면 딸과 함께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2시간가량의 미술학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아이와 함께 놀이도 하고, 숙제도 봐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함께 TV를 보다 저녁을 먹었다. 밤이 깊어지면 아이를 먼저 재우고 아내를 기다렸다. 전철역까지 아내를 마중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가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직장에서 전투하듯이 일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체로 무던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그러나 아이에게 온 신경을 쓰느라 몸과 마음은 더 피곤했습니다. 물론 행복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지만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에게 작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어요.”

휴가를 마치기 얼마 전이었다. 가현이가 “아빠, 엄마 둘 중 하나만 나가서 돈 벌어 오면 안 돼?”라고 물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릴 적부터 헤어짐에 익숙했던 딸이었지만 아빠와의 한 달간의 시간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식휴가가 끝나고 출근하는 첫날, 가현이가 뜨거운 물에 데어 화상을 입었다. 괜히 아빠 책임인 것 같아 출근 첫날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빠도 참 힘든 세상이다’,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노지현 기자
▽ 사회부 이진구 기자 이미지 기자
▽ 산업부 정효진 기자
▽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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