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비 신고 묵살 피해’ 국가책임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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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서울대 조교 성희롱’ 판결 사회인식 바꿔
법원 ‘사법 60년’ 판결사 펴내

“서울 시내에 간첩이 나타났어요. 빨리 출동하세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이끄는 무장공비 31명이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경찰서 홍제동파출소에는 세 차례나 신고 전화가 걸려왔지만 파출소에 대기하던 파출소장과 경찰관, 육군 장교 등은 “진짜 간첩이 아닐 수도 있다”며 출동하지 않았다. 신고한 시민 A 씨는 무장공비 가운데 한 명과 홀로 15분간 사투를 벌이다 총탄에 맞아 숨졌다.

1971년 대법원은 “군과 경찰의 직무유기 때문에 A 씨가 죽음에 이르렀으므로 국가가 A 씨 유가족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부의 부당한 간섭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도 국민의 권리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법원행정처 사법발전재단 사법사편찬위원회는 최근 한국 사법부가 60년간 걸어온 길을 조망하기 위해 ‘역사 속의 사법부’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회변화를 이끌어 낸 중요한 민사 가사 행정사건 판결들이 소개돼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국민의 77%가 농민이었고, 새로 수립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농민에게 땅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였다. 1949년 정부는 스스로 경작하지 않는 사람의 땅을 국가가 돈을 주고 사들인 뒤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되파는 내용의 ‘농지개혁법’을 만들었다. 이후 땅의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소송이 줄줄이 이어졌지만 법원은 ‘경작자 우선’의 원칙을 명확히 해 지주-소작농 관계를 해체했다.

1965년 한일수교협정이 체결되자 일제강점기에 은행에 예금했던 돈을 국가가 돌려달라는 소송도 제기됐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채무를 청산했고 청구권자금도 받았으므로 국가가 이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 법원은 “국가가 협정을 맺고 보상을 받은 것은 국민 개개인의 대리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기각했다.

공중전화가 등장한 뒤에는 시민 B 씨가 “공중전화가 ‘먹어버린’ 5원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했고, 1982년 대법원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여성이 대부분인 전화교환원의 정년을 43세로 정한 것은 남녀차별”이라고 판결해 근로계약에서 남녀차별을 시정하는 전환점이 됐다.

1993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를 가져온 첫 판결이었다. 서울대의 한 교수가 여성 조교에게 어깨와 손 등 실체 일부를 건드리고 몸매를 감상하듯 훑어봤다는 내용으로, 일상적인 성희롱도 성폭력처럼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사법60년사’ 중요 민사사건 판결

-1949년 ‘농지개혁법’ 소송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확립
-1968년 일본이 지급한 청구권자금 으로 일제강점기 예금 반환 소송 기각
-1973년 영남화학의 유해가스 배출 사건에서 공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인정
- 2003년 도롱뇽이 낸 천성산 터널공사 금지 가처분신청 “자연물은 소송 당사자 아니다”라며 기각
-2005년 여성의 종중원 지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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