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이끄는 무장공비 31명이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경찰서 홍제동파출소에는 세 차례나 신고 전화가 걸려왔지만 파출소에 대기하던 파출소장과 경찰관, 육군 장교 등은 “진짜 간첩이 아닐 수도 있다”며 출동하지 않았다. 신고한 시민 A 씨는 무장공비 가운데 한 명과 홀로 15분간 사투를 벌이다 총탄에 맞아 숨졌다.
1971년 대법원은 “군과 경찰의 직무유기 때문에 A 씨가 죽음에 이르렀으므로 국가가 A 씨 유가족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부의 부당한 간섭뿐만 아니라 잘못된 판단도 국민의 권리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법원행정처 사법발전재단 사법사편찬위원회는 최근 한국 사법부가 60년간 걸어온 길을 조망하기 위해 ‘역사 속의 사법부’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사회변화를 이끌어 낸 중요한 민사 가사 행정사건 판결들이 소개돼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국민의 77%가 농민이었고, 새로 수립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농민에게 땅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였다. 1949년 정부는 스스로 경작하지 않는 사람의 땅을 국가가 돈을 주고 사들인 뒤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되파는 내용의 ‘농지개혁법’을 만들었다. 이후 땅의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소송이 줄줄이 이어졌지만 법원은 ‘경작자 우선’의 원칙을 명확히 해 지주-소작농 관계를 해체했다.
1965년 한일수교협정이 체결되자 일제강점기에 은행에 예금했던 돈을 국가가 돌려달라는 소송도 제기됐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채무를 청산했고 청구권자금도 받았으므로 국가가 이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 법원은 “국가가 협정을 맺고 보상을 받은 것은 국민 개개인의 대리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기각했다.
공중전화가 등장한 뒤에는 시민 B 씨가 “공중전화가 ‘먹어버린’ 5원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했고, 1982년 대법원은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여성이 대부분인 전화교환원의 정년을 43세로 정한 것은 남녀차별”이라고 판결해 근로계약에서 남녀차별을 시정하는 전환점이 됐다.
1993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를 가져온 첫 판결이었다. 서울대의 한 교수가 여성 조교에게 어깨와 손 등 실체 일부를 건드리고 몸매를 감상하듯 훑어봤다는 내용으로, 일상적인 성희롱도 성폭력처럼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사법60년사’ 중요 민사사건 판결
-1949년 ‘농지개혁법’ 소송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확립 -1968년 일본이 지급한 청구권자금 으로 일제강점기 예금 반환 소송 기각 -1973년 영남화학의 유해가스 배출 사건에서 공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인정 - 2003년 도롱뇽이 낸 천성산 터널공사 금지 가처분신청 “자연물은 소송 당사자 아니다”라며 기각 -2005년 여성의 종중원 지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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