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白虎, 화합도 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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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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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사 정상조 씨의 ‘호랑이論’

27년전 제대직후 에버랜드로… 호랑이 등 맹수 사육만 20년
“수컷 ‘칸’ 폼 잡고 다니면 암컷 ‘평화’ 중재자 역할
백호에게 배울것 많아요”

지난해 12월 28일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호랑이 아빠’ 정상조 씨가 7개월 된 황호 ‘경인’이를 품에 안았다. 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경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제공 에버랜드
지난해 12월 28일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호랑이 아빠’ 정상조 씨가 7개월 된 황호 ‘경인’이를 품에 안았다. 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경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진 제공 에버랜드
하얀 눈밭 위에 백호 ‘칸’이 어슬렁거렸다. 갈기를 빳빳하게 세우고 어깨와 고개를 잔뜩 추켜들어 그렇지 않아도 큰 몸집이 다부져 보였다. “보세요, 저 녀석이 백호(白虎) 중에서 유일한 수컷으로 사파리의 왕자인데 이제 두 살이지만 벌써부터 잔뜩 폼을 잡고 다니죠.” 사육사 정상조 씨(48)가 흐뭇하게 칸을 지켜봤다. “칸, 떨어져. 싸우면 안 돼.” 움츠린 황호(黃虎) 암컷 주변을 맴돌던 칸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정 씨 입에서 별안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백호의 왕자 칸도 정 씨의 다그침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호랑이 아빠’ 정 씨는 20년간 호랑이, 사자 등 맹수를 기른 베테랑 사육사다. 1일부터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백호와 황호가 함께 사는 사파리도 그의 작품이다. 비교적 온순하고 뭉치는 백호와 달리 드세고 독립적인 황호가 8000여 m²(약 2400평) 사파리 안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사육에 성공한 데는 정 씨의 섬세한 보살핌이 컸다.

정 씨는 1983년 군대에서 제대한 다음 날 바로 당시 자연농원이던 에버랜드 동물원에 입사했다. 입대 전 7개월 동안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정 씨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회사 간부가 제대를 앞두고 정 씨를 불렀다고 한다. 이후 27년간 동물원을 떠나지 않고 내내 사육사로 동물 곁을 지킨 정 씨는 동물원 최고참이 됐다. 하지만 지금도 오전 7시면 가장 먼저 출근한다. 잠은 잘 잤는지, 식사부터 분뇨까지 일일이 관찰하며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스레 돌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관련 전공을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정 씨는 호랑이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생태를 파악했다. “호랑이에 대한 책을 수백 권 읽는 것보다 실제로 호랑이를 한 번 보고 먹이를 주며 관찰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호랑이들은 정 씨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호랑이가 다쳐 수술이라도 받는 날이면 정 씨는 아픈 자식 돌보듯 속이 탄다. 백호 ‘시저’가 사자 무리의 기습공격을 받아 온몸에 상처를 입고 수술을 받던 날도 정 씨는 밤새 발을 굴렀다.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녀석이 온몸이 찢어져 누워 있는 걸 보자니 제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 태어날 때부터 지켜본 호랑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듬직하다. 성격에서 이름을 따 ‘평화’라고 부르는 암컷 백호는 정 씨에게는 장녀 같은 호랑이다. “호랑이들끼리 싸움이 붙었을 때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아빠가 없을 때 동생들 돌보는 듬직한 장녀지요.” 칸과 ‘신비’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귀여운 막내다. 기분이 좋으면 정 씨와 호랑이들은 ‘푸르르르, 푸르르르’ 입술 떨리는 소리를 내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사육사가 밥을 주려 다가가도 날뛰어 발톱이 다 부러지곤 했던 ‘우호’가 무리 속에서 얌전히 노는 것도 뿌듯하다.

“백호는 온순하고 화합을 잘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인하며 성실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한 번 싸우면 이길 때까지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지요.” 올해 경인년은 백호랑이 해라고 일컬어진다. 정 씨는 “백호랑이 기운을 받아 국민들도 화합하고 성실과 강인함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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