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 항소심서 무죄판결 잇따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0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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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11월 26일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법원 항소심에서 이 죄로 기소당한 이들에게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 중에는 여성의 가족에게까지 결혼할 사람이라며 인사를 하고 1년 넘게 총각이라고 속이며 성관계를 맺은 유부남도 있다.

서울남부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이승호)는 4일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백모 씨(30)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헌재의 혼인빙자간음 위헌 결정으로 법률이 소급해 효력을 상실했고, 범죄가 성립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부남인 백 씨는 여성 정모 씨(29)와 혼인할 뜻이 없었는데도 2007년 5월 서울의 한 모텔에서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처음 든 여자다.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며 정 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정 씨는 백 씨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

백 씨는 정 씨의 가족들을 만나 결혼할 사이라고 인사를 하고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에서 정 씨와 수개월간 동거를 하는 등 정 씨를 2008년 7월까지 1년 넘게 속였다. 사실을 알게 된 정 씨에게 고소당한 백 씨는 9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백 씨는 잘못을 뉘우치며 피해를 보상하기로 한 점이 참작돼 실형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선고 뒤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이에 앞서 부산지법 형사3부(부장판사 홍성주)는 4일 사기와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 씨(43)에 대한 항소심에서 혼인빙자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김 씨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그러나 돈을 편취한 사기 혐의는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유부남인 김 씨는 이모 씨(36)에게 "아내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다. 우리 결혼하자"고 속인 뒤 2006년 12월∼2007년 1월 사이 3차례에 걸쳐 호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재판부는 이날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모 씨(47)에 대한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박 씨는 평소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최모 씨(49)에게 "결혼하겠다"고 속인 뒤 2008년 1∼5월 5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진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최 씨의 돈을 빼돌린 혐의(사기)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내렸다.

검찰은 헌재 위헌 결정 뒤 혼인빙자간음죄로 수사가 진행 중인 고소사건은 무혐의 종결 처리하고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공소를 취소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공소 철회가 불가능해 이처럼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려야 한다.

한경환 서울남부지법 공보판사는 "항소심 무죄 판결 뿐 아니라 과거 유죄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도 이어지고 있다"며 "남부지법에도 2004년 혼인빙자간음과 사기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사건, 1990년 혼인빙자간음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재심 청구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
조종엽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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