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만드는 파란눈 엄마 보며 내게도 가족이 생겼구나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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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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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후원의 밤’ 참석 美우주항공연구소 최석춘 씨가 말하는 ‘입양’
받은 사랑 나누려고 실천
한국서 장애아동 입양
“입양은 가슴으로 낳는 사랑”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인 최석춘 씨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입양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인식되다 보니 입양을 원하는 가정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인 최석춘 씨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입양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인식되다 보니 입양을 원하는 가정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파란 눈의 어머니는 먼 한국땅에서 온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양배추에 식초와 후추를 잔뜩 뿌려서 미국식 김치를 만들어주셨어요. 그때 ‘아,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구나’ 하고 가슴이 뭉클했죠.”

양부모의 이야기를 하던 최석춘(미국명 스티브 모리슨·53) 씨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최 씨는 미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우주항공연구소의 수석연구원으로 차세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인공위성의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우주공학자다.

최 씨가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모리슨 씨 가정에 입양된 것은 14세 때이던 1970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의 가출, 동생과의 생이별 등으로 어린 가슴에 상처를 입고 5세 때 강원도 묵호의 보육원에서 서울의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로 옮겨와 8년을 생활한 그에게 입양은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항상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동생들이 있었던 집에서 저도 가족의 사랑이라는 걸 배웠어요.”

그는 생물학자였던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 한국에선 낙제를 면치 못했던 수학과 물리과목에서 출중한 성적을 보이며 닐 암스트롱 등 우주인의 산실로 유명한 퍼듀대 우주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을 앞두자 미국항공우주국(NASA), 보잉사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 “꿈만 같다는 행복감과 함께 ‘이토록 많은 축복을 받았는데 이것을 나눠줘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사회에 진출하자 한국의 홀트재단에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꾸준히 기부를 계속한 그는 1982년에는 재단이사로까지 선출돼 활동에 참여했다.

재단이사 임기를 마친 최 씨는 1999년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를 설립해 한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가 입양을 꺼려 아이들이 해외로 나가게 되는 것인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보니 해외입양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다뤄지더군요.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다들 ‘쉬쉬’하며 입양을 하다 보니 입양에의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입양을 원하는 가정도 망설이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개입양 홍보에 힘썼다. 입양홍보회는 현재 전국 27개 지역 1400여 개 공개입양 가정을 회원으로 둘 만큼 성장했다. 매년 전국입양가족대회, 입양의 날 행사를 주도하고 입양가족들을 위한 캠프와 입양부모 교육 등 다양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 내 입양문화를 바꾸기 위해 발로 뛴 10년, 그도 종종 벽에 부닥친다. 최근에도 미국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한 한국 여성이 입양절차를 밟다가 입양 가능 연령(만 45세)을 몇 개월 넘겨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겨 속을 썩이고 있다. “입양과 관련된 제도적인 벽이 적지 않아요. 규정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그런 방향으로 고민을 해봤으면 했죠.”

‘입양은 가슴으로 낳는 사랑’이라고 설파하는 그는 스스로도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2000년에 오혜성(미국명 조지프·12) 군을 입양해 출산을 통해 얻은 3명의 딸과 함께 키우고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오 군은 그에게는 ‘살인미소’를 가진 귀한 아들이다. “제가 직장에 다녀오면 달려와 가장 먼저 안아주는 아이가 조지프예요.” 최 씨가 휴가임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한국을 찾은 이유는 10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 ‘입양아 후원의 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200여 명의 후원자가 참여하는 이날 행사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입양홍보회의 활동에 쓸 예정이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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