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대군 역할서 시골 늙은이 처지로”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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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돈 거둬 나눠주는 봉하대군 역할서 술로 신세 한탄하는 시골 늙은이 처지로”

노건평씨 항소심 재판부 “동생 죽게 한 못난 형…”
2년 6개월로 감형하며 10분가량 따끔한 훈계

“동생(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게 한 못난 형으로, 이제는 해가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로 전락한 노건평 씨(사진)에게 1심에 비해 형량을 줄이는 게 마땅하다.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다.”

서울고법 형사1부 조병현 부장판사는 23일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청탁의 대가로 23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노 씨의 항소심에서 이같이 형량을 낮추면서 10분가량 따끔하게 훈계했다.

조 부장판사는 “노 씨는 평범한 세무공무원으로 생활하다 동생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로열패밀리’가 됐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며 “돈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거둬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봉하대군의 역할을 즐겨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래 세종증권의 인수가격은 500억∼600억 원에 불과했지만 매각 과정에서 1100여억 원까지 올라가 세종캐피탈은 뜻하지 않은 수익을 보게 됐고 노 씨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며 “이 사건은 세종캐피탈의 노회한 상술과 노 씨의 추악한 탐욕이 얽혀 너무 지독한 냄새가 난 나머지 검찰이 수사한 것이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 부장판사는 끝으로 “1심의 형량은 전직 대통령의 형이라는 점이 가중요소로 작용했다”며 “이제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의 신세로 전락한 노 씨에게 가중적 형량을 벗겨줄 필요가 있다”고 말을 맺었다. 푸른색 수의를 입고 휠체어에 탄 채 법정에 들어선 노 씨는 훈계가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고 판결 직후 재판부에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재판부는 노 씨와 함께 공범으로 기소된 노 전 대통령의 고교동창 정화삼 전 제피로스골프장 대표에게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에 추징금 5억6000여만 원을, 정 씨의 동생인 정광용 씨에게는 징역 2년에 추징금 13억276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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