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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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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국무총리에 내정되자마자 충청권의 최대 현안인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문제가 정치권의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4일 정 총리 내정자가 전날 세종시 원안 추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 발언에 대해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원안대로 추진한다”며 불끄기에 나섰다.
○ ‘정운찬 내정은 세종시 후퇴 의도’
야권은 정 내정자의 발언이 세종시 원안을 변경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고 일제히 몰아붙였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이 정 총리 내정자를 선택한 것은 세종시를 후퇴시키기 위한 용도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박병석 변재일 이시종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 내정자가 세종시 원안 추진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 인준 반대를 비롯한 강력한 투쟁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충남도당위원장 양승조 의원도 성명을 내고 “이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며 “정 내정자는 이명박 정권 출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하지 않고 있는 정부기관 이전 변경고시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는 이날 당5역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충청권 민심을 달래려고 충청도 출신을 총리로 기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충청인을 분노케 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고 비판했다. 정 내정자의 고향은 충남 공주다.
박선영 대변인은 “정 내정자를 기용한 이유는 세종시를 축소하기 위한 술수였다”며 “충청권 총리의 손을 빌려 세종시를 유야무야하겠다는 것은 몹쓸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 ‘원안 고수’ 여당, 내부에선 ‘수정 불가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원칙은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오전 라디오 방송에서 “청와대가 세종시 수정안을 준비 중”이라는 발언을 한 차명진 의원은 파문이 확산되자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충청권 출신인 정진석 의원도 “정 내정자의 발언은 세종시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 것이다. 이를 놓고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잘못됐다”고 감쌌다.
정 내정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지금은 개인적인 말을 해야 될 시기가 아닌데 개인적인 생각을 말했다. 후회는 안 한다. 다만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당내에서는 정 내정자가 “할 말을 했다”고 반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비효율적인 세종시 원안은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차 의원 등 상당수 수도권 의원들은 세종시 추진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세종시사업의 추진 속도를 조정하거나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거세질 것이라는 게 당내 대체적 기류다.
○ 세종시 무엇이 문제?
세종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시가 세워져도 독자적으로 도시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세운 원안에 따르면 9부 2처 2청의 행정기관이 옮겨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자족도시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행정타운’ 정도로 전락해 충청권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도권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종시가 결과적으로 수도권 과밀 해소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을 넓게 확장하는 효과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종시 문제는 충청권 내부의 갈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충북 청원군 일부 지역이 세종시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세종시의 행정구역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충북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청원 일부가 세종시에 포함되면 개발 이익은 충남이 갖고 충북은 규제의 불이익만 덮어쓸 거라는 여론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정우택 충북지사는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의원들에게 청원군을 세종시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충남 “2조5000억 쏟아부어 공사중인데…” 격앙
충북 일각 “세종시 편입 원치않아”
수도권 “지방과 상생 모색해야”▼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행정도시 원안 추진 불가’ 발언에 대해 충청권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4일 “행정도시 원안 추진에 부정적인 정 내정자의 발언은 충청인의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대단히 유감스럽고 듣기에 거북하다”며 “세종시 건설에 대한 정 내정자의 발언 등을 지켜보면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사무처장과 세종시 정상추진 연기군 주민연대 홍석하 사무국장은 “이제 행정도시의 추진은 기대하기 어렵고 이대로 가다가는 기존 행정도시건설특별법까지 무너질 것”이라며 “다음 주 정부를 규탄하고 행정도시의 정상 추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4일 오전 긴급회의를 소집한 조선평 행정도시 사수 연기군 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연기군의원)은 “행정도시는 지방 살리기일 뿐 아니라 과밀화 해소 등을 통해 수도권도 살리자는 국책사업”이라며 “이미 2조5000억여 원을 투자해 한창 공사를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해 ‘원안 추진 불가’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충북지역 일각에선 행정도시 편입을 반대하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청원군의 부용면세종시편입반대대책위 장진식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행정도시가 충청권을 포괄한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애꿎게도 부용면과 강내면 일부를 행정도시 주변지역으로 묶어 규제를 받게 하고 대대로 살아온 행정구역을 잃게 만들었다”며 “정부가 행정도시를 축소한다면 이번 기회에 부용면과 강내면을 행정도시 권역에서 제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충청권 반발이 거센 것과 달리 수도권에서는 정 내정자의 발언을 반기는 분위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에 있던 공공기관을 정부가 나서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것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서울과 지방 모두가 상생하는 방안을 찾는 게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도 “정 내정자의 발언에 공감한다”며 “세종시 논란은 시간을 두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청원=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 세종시 어떻게 돼가나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충남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사실상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 ‘신(新)행정도시건설추진기획단’을 설치했고, 그해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행정수도 프로젝트는 탄력을 얻었다.
당시 행정수도 후보지로 △충남 연기 및 공주 일대 △공주 및 논산 일대 △충남 천안 △충북 진천 및 음성 등 4개 지역이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정부는 2004년 8월 현재의 세종시 건설 예정지인 충남 연기 공주 지역을 후보지로 최종 확정했다.
후보지가 결정되자 투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연기군은 행정수도 후보지 평가결과가 발표된 이후 한 달 사이에 아파트 값이 13% 급등했다.
하지만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선고를 받으면서 행정수도 건설은 1차 시련을 맞게 된다. 충청권 민심을 얻기 위해선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했던 노무현 정부는 대안을 고심한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행정수도는 바꾸지 않되 행정관청 일부 이전을 포함해 문화, 의료, 연구 등 복합 기능을 갖춘 도시를 만들기로 하고 도시명을 세종특별자치시로 정했다. 노 정부 말기인 2007년 7월 세종시 착공식이 열리면서 본격적인 건설이 시작됐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세종시 건설 계획은 다시 한 번 흔들리고 있다. 국무총리실을 포함한 중앙행정기관들이 자리 잡을 터는 전체 세종시 면적 7290만 m² 중 60만 m²에 불과하다. 따라서 산업·배후단지, 대학, 대기업, 연구소 등이 추가로 들어와야 하지만 지금까지 ‘불확실한 도시’에 이전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곳은 거의 없다. 정치권도 충남 청원군 일대를 세종시에 편입하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7월 임시국회 때 세종시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여기에 세종시 예산을 둘러싼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민주당은 2007년 수립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편성된 세종시 예산보다 2008년 재정운용계획에 잡힌 2010년 예산이 3309억 원 축소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2009년 예산 5771억 원보다 20.6% 늘어난 6959억 원을 내년 예산으로 신청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세종시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행정타운이 들어설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의 평탄작업과 도로 개설, 상수도 시설 설치 등 용지 조성 공사가 7월 현재 50%가량 진행됐다. 행정기관 가운데 4층 규모의 총리실 건물은 파워크레인이 동원돼 기초공사도 시작됐다.
세종시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 남면, 동면 일원과 공주시 장기면, 반포면 일원에 조성된다. 목표인구는 2030년까지 50만 명. 행정도시건설청에 따르면 착공식 이후 각종 설계와 공사 등에 총 2조5406억 원이 투입됐다. 이에 앞서 토지 및 건물 보상비는 모두 4조6947억 원이 풀렸다. 8월 말 현재 총사업비(22조5000억 원) 기준 23.86%가 집행된 상태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전체 7290만㎡ 중 행정기관 터는 60만㎡ 불과
대기업-대학 등 이전 안하면 ‘텅빈 도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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