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언어영역/비판적 사고의 이해 (3)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9분


생각 표현한 어휘·시각의 ‘적절성’, 정보의 우열 가른다

《지난 시간에는 바르고 정확한 언어 사용의 척도인 정확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의 주제는 비판적 사고의 또 다른 내적 준거인 적절성이다. 적절성이란 제시된 지문이 얼마나 적절하게 언어를 활용하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적절성이란 언어 사용에 따른 사고 과정이 적절한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사고 과정에 나타나는 가정, 원리 등이 적절하게 적용되고 구명되었는지가 측정요소가 된다. 정보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기준이 정확성이라면 정보의 우열(優劣)을 가리는 기준이 적절성이다. 내용을 표현한 어휘, 문제에 접근한 시각 등에 대한 판단으로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같은 내용을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적절성은 다시 내용의 적절성과 표현의 적절성으로 나뉜다. 내용의 적절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문단의 원리와 관계가 있다. ‘주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문장이 충분한가(완결성)’, ‘논점에서 일탈된 내용은 없는가(통일성)’, ‘글의 여러 요소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가(일관성)’와 같이 문단의 원리를 점검하면 내용의 적절성에 의한 비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이라도 문맥적으로 적절성이 달라지므로 문맥적 상황과 연계해 살펴봐야 한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접해야 한다. 그럼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좋은 글을 알기 위해서는 국립국어원이 2005년 발간한 연구보고서 중 ‘좋은 글의 요건’을 참고하길 권한다. 국립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 자료마당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예문> 199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4번 문항

(가) 역사가 옛날로 올라갈수록 개인의 비중이 사회보다도 컸던 것 같다. 사회 구조가 개인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산업과 정치가 현대와 같은 복잡 사회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모여서 사회가 되므로, 마치 사회는 개인을 위해 있으며, 개인이 사회의 주인인 것같이 생각되어 왔다.

(나) 그러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는 정치, 경제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가 개인보다도 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영국을 출발점으로 삼는 산업 혁명은 경제의 사회성을 강요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인 사회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다) 19세기 중엽에 탄생된 여러 계통의 사회과학을 보면, 우리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사회 중심 체제로 변한 것을 실감케 된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개인이 중심이고 사회가 그 부수적인 존재같이 느껴졌으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사회가 중심이 되고 개인은 그 사회의 부분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사회가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든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부터 그 성격이 점차 굳어졌다. 실제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내가 살고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으며, 이때의 ‘우리’라 함은 정치, 경제 등의 집단인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라) 현대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정당하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가 함은 별개의 문제이다. 일찍이 키르케고르나 니체 같은 사람들은,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하게 호소한 바 있다. 오늘날까지도 사회와 개인에 대한 대립된 견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전부이며 개인은 의미가 없다든지, 개인의 절대성을 주장한 나머지 사회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도 모두 정당한 견해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는 개인 속에서 그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를 발견하며, 그 사회 속에서 개인을 발견한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깊은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개인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에 속하지 않는 개인을 생각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 그러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원자와 물질의 역학적 관계와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원자가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이 없다면 원자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존재성만을 중심으로 본다면, 개인과 사회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다 설명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세포와 유기체의 관계와 같이 생각한다. 생명적 존재를 위한 생성 원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은 허버트 스펜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존재나 생성의 과정에 그치지 않는 더 높은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면서 생성하며, 생성하면서 문화 역사를 창조해 가는 관계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발전과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변증법적 관계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24. (라)의 내용에 대하여 제기할 수 있는 비판으로 가장 타당한 것은?

① 여기서 비판하는 두 관점은 개인을 의미 없다고 본 것도 아니며, 개인이 절대적이라고 본 것도 아니다. 자신 이 반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주장을 확대 해석해 놓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②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말에는 개인은 철두철미하게 사회적 존재라는 생각이 이미 들어 있다.

③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에 중요한 할 일이 많은데 개인과 사회의 문제 따위나 생각하다니, 이런 문제보다는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다루어야 한다.

④ 개인과 사회를 논하면서 키르케고르와 니체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가? 우리 역사에도 뛰어난 사상가들 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생각을 빌려 논의해야 한다.

⑤ 사회에 속하는 개인들은 매우 복잡한 상호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러한 개인 간의 상호 관계가 철저하게 규명되지 않고서는 인간의 본질이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빛도 던져 주지 못한다.』

24번 문항은 5차 국정 교과서에 있던 ‘현대사회의 과제’(김형석)를 토대로 출제된 문제다. 답은 ①번으로 글쓴이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원자와 물질의 역학적 관계로 보는 견해’와 ‘세포와 유기체의 관계로 보는 견해’를 확대 해석,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적절성에 의한 비판’의 내용을 측정하는 보편적인 유형이다.

<예문> 2010학년도 수능 대비 6월 모의평가 28번 문항

(가) 조선 전기 조선군의 전술에서는 기병을 동원한 활쏘기와 돌격,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병의 다양한 화약 병기 및 활의 사격 지원을 중시했다. 이는 여진족이나 왜구와의 전투에 효과적이었는데, 상대가 아직 화약 병기를 갖추지 못한 데다 전투 규모도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적 우위는 일본군의 조총 공격에 의해 상쇄되었다.

(나) 16세기 중반 일본에 도입된 조총은 다루는 데 특별한 무예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분이 낮은 계층인 조총 무장 보병이 주요한 전투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의 절강병법은 이러한 일본군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전술로,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주력이 천민을 포함한 일반 농민층이었는데, 개인의 기량은 떨어지더라도 각각의 병사를 특성에 따라 편제하고 운용해 전체의 전투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근접전용 무기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이용되었다.

(다) 조선군의 전술은 절강병법을 일부 수용하면서 기병 중심에서 보병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조총병인 포수와 각종 근접전 병기로 무장한 살수에 전통적 기예인 활을 담당하는 사수를 포함시켜 편제한 삼수병 체제에서 보병 중심 전술이 확립되었음을 볼 수 있다. 17세기 중반 이후 조총의 신뢰성과 위력이 높아지면서 삼수 내의 무기 체계의 분포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사격 기술을 익히기 어렵고 주요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활 대신, 조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증가했다.

(라) 조선에서의 새로운 무기 수용과 전술의 변화는 단순한 군사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수반하였다. 군의 규모는 관노와 사노 등 천민 계층까지 충원되면서 급격히 커졌고,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에 대한 통제도 엄격해졌다. 성인 남성에게 이름과 군역 등이 새겨진 호패를 차게 하였으며, 거주지의 변동이 있을 때마다 관가에 보고하게 하였다. 대규모 군사력의 운용으로 국가 단위의 재정 수요도 크게 증대했는데, 대동법은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선혜청에서 대동법의 운영을 전담하면서 재정권의 중앙 집중화가 시도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방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재정의 상당 부분이 조정으로 귀속되었다. 한편 가호(家戶)를 단위로 부과하던 공물을 농지 면적에 따라 쌀이나 무명 등으로 납부하게 하여, 논밭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28. 위 글과 관련하여 <보기>를 참고 자료로 제시할 때, (가)∼(다)에 적절한 자료를 바르게 제시한 것은? [3점]

「<보기>

ㄱ. 화포가 적에 대응하는 데에는 그 이익이 크니, 왜구나 야인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ㄴ. 기병은 평지에서 이롭고 보병은 험지에서 이롭습니다. 우리나라는 구릉이나 논이 많아 진실로 보병을 쓰는 것이 합당합니다.

ㄷ. 지방의 군사 제도는 지극히 허술하다. 수령의 휘하에 한 명의 군졸도 없으니 만약 급박한 일이 생겼을 경우 실로 방어할 도리가 없다.

ㄹ. 낭선은 가지를 다 자르지 않은 대나무에 창날을 꽂아 만들고, 당파는 작살을 개량해 만든다. 나이가 장성하고 얼굴이 크고 힘이 센 사람이 낭선을 다루고, 살기와 담력이 있는 자가 당파를 다룬다.」

(가) (나) (다)

① ㄱ ㄹ ㄴ

② ㄱ ㄹ ㄷ

③ ㄴ ㄷ ㄱ

④ ㄴ ㄷ ㄹ

⑤ ㄷ ㄹ ㄴ』

이 글은 조총의 도입으로 나타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총이 도입됨에 따라 군의 규모 증대, 기병 중심에서 보병 중심으로의 변화, 조총의 비중 증가 같은 군사적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변화로는 백성에 대한 통제 강화, 대규모 군사력의 운용으로 인한 국가 단위의 재정 규모 증대, 재정권의 중앙 집중화, 조세제도의 변화 등이 있다.

제시된 문제를 풀어보자. ㄱ은 왜구나 야인들이 화포를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ㄴ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조건상 기병보다는 보병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ㄷ은 수령의 휘하에 한 명의 군졸도 없는 상황을 들어 지방 군사 제도가 허술함을 말하고 있으며, ㄹ은 ‘낭선’, ‘당파’ 같은 ‘근접전 병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를 (가)∼(다)의 내용과 연결시키면, (가)는 조선군이 여진족이나 왜구와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 상대가 아직 화약 병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ㄱ을 참고 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나)는 조총과 함께 다양한 근접전 병기를 갖춘 보병을 편성한 전술인 절강병법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ㄹ을, (다)는 조선군의 전술이 절강병법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보병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ㄴ을 참고 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답은 ①번.

▶지난 기사와 자세한 설명은 easynons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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