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하의도 눈물바다… 면사무소에 분향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18일 18시 09분



생가 둘러보는 어린이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18일 오후 그의 고향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슬픔에 잠겼다. 폐렴으로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중했던 10일 어린이들이 김 전 대통령의 하의도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하의도=박영철 기자
생가 둘러보는 어린이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18일 오후 그의 고향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슬픔에 잠겼다. 폐렴으로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중했던 10일 어린이들이 김 전 대통령의 하의도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하의도=박영철 기자
18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끝내 서거하자 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큰 슬픔에 잠겼다.
김 전 대통령의 친척이 모여 사는 대리 주민들은 하의면사무소에서 마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알리자 울음을 터뜨렸다. 김 전 대통령이 최근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주민들은 “훌훌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시다니…”라며 망연자실했다.
하의도에 살고 있는 친척 가운데 김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6촌 동생 김재신 씨(82)는 “석 달 전에 뵈었을 때만 해도 건강하셨는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그때 생가와 4학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 한문을 배웠던 덕봉강당을 둘러보고 흐뭇해하시면서 올라가셨는데 그게 마지막 길이 돼버렸다”며 흐느꼈다.
덕봉강당을 관리하는 김도미 씨(58)는 “서당이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라며 고문서가 많으니 관리를 잘하라고 당부하신 게 유언이 될 줄 몰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양성열 대리 이장(58)은 “우리나라의 큰 별이자 민주화를 이루신 어르신을 잃은 슬픔에 주민 모두가 비탄에 잠겨 있다”고 전했다. 후광리에 사는 윤복례 할머니(77)는 4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그때 뵐 때는 건강하셨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 전 대통령은 4월 24일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 때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으로 하의도를 찾았다. 아태재단 이사장이던 1995년 이후 14년 만의 고향 나들이가 생전의 마지막 귀향이 됐다.
당시 주민들은 김 대통령의 귀향을 정성껏 준비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데다 연로한 탓에 언제 또 오실 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김 전 대통령에게 하의도 비경(秘境)인 ‘큰바위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해안가 길을 내기도 했다. 하의도 부녀회에서는 행사 당일 1000인분의 음식을 장만했다.
7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무척 즐거워했다. 정연순 부녀회장(47)은 “이곳에서 나는 전복과 뻘낙지, 홍어, 미역국 등으로 점심상을 차렸는데 음식을 거의 남기지 않고 맛있게 드셨다”며 “‘고향에 오니 잃었던 입맛을 되찾은 것 같다’며 무척 좋아하셨는데 세상을 떠나셨다니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큰바위 얼굴’ 모양의 섬을 보고 “나하고 닮은 것 같지 않느냐”며 수행원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4학년까지 다녔던 하의초등학교(당시 하의공립보통학교)에 들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고향에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것을 무척 미안해했다고 한다. 박종원 하의면장(50)은 “일부 주민들이 ‘대통령께서 그럴 수가 있느냐’며 서운해할 정도였다”며 “대통령께서 면사무소 신축 개청식 때 ‘향심무궁(鄕心無窮)’이라는 글을 써서 보내주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윤홍달 하의면 청년회장(50)은 “우리 대통령께서는 소탈하면서도 주위를 소리 없이 챙기셨던 분”이라며 1999년 생가 복원 때 일을 떠올렸다. 윤 회장은 “당시 신안군에서 대통령이 되셨으니 사업비를 늘리겠다고 하자 ‘절대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로 허례허식을 경계하셨다”고 회고했다.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하의면사무소는 2층 회의실에 임시분향소를 마련했다. 목포에서 배편으로 국화와 영정 사진이 도착하자 연단 앞쪽을 국화송이로 채웠다. 주민들은 밭일과 염전 일을 제쳐두고 분향소를 찾았다. 박상명 하의면 부면장은 “나이가 많은 주민들이 뭍에 나가기 힘들어 면사무소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생가에도 대형 영정 사진을 걸었다”고 말했다.
생가를 관리하는 성현숙 씨(42·여)는 “병세가 위중할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가를 찾아 방명록에 글을 남기며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했다”며 “좀 더 사셨다면 나라를 위해 하실 일이 많으셨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울먹였다.
하의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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