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3주째 토공 비정규직들의 ‘잔인한 7월’

입력 2009-07-22 02:55수정 2009-09-2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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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통과 한시가 급한데 정치권 싸움에 속이 바짝바짝”
새 직장 못 구해 앞날 캄캄
법 통과땐 재고용 희망있어
의원들은 우리사정 아는지…

“정치권의 대치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갑니다. 정치 뉴스는 보고 싶지 않지만 비정규직법안이 어떻게 될지 몰라 하는 수 없이 보는데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저에게는 한시가 급한 일인데요….”

지난달 30일 해고된 한국토지공사 비정규직 직원 145명 가운데 한 명인 강모 씨(41)는 목이 메는 듯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21일은 이들이 해고된 지 3주째 되는 날이다. 해고된 직원 가운데 일부는 새 직장을 구했지만 대부분은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토공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들을 다시 고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해고된 직원들은 가슴을 졸이며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국회는 연일 마비 상태다.

○ 15군데 면접 봤지만 오라는 곳 없어

70세에 가까운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 박모 씨(29)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해고된 후 행정인턴으로 근무하며 한 달에 150여만 원을 받고 있지만 연말까지인 계약기간이 끝난 뒤 취직이 안 될 것에 대비해 저축을 하고 있다. 생수값을 아끼려고 박 씨의 부모님은 동네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온다. 부식도 최소한의 양만 산다. 고기는 구경한 지 오래 됐다.

박 씨의 아버지는 한 달에 20만 원을 받는 공원 지킴이활동을 시작했다. 박 씨는 50여 군데에 원서를 냈고 15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기다리는 소식은 오지 않았다. 지금은 채용시즌이 아니어서 사람을 구하는 업체도 많지 않다. 그는 “내 월급으로는 세 식구가 한 달 사는 것도 빠듯해 연말까지 얼마나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내년에 취직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울먹였다.

강 씨는 구인공고가 난 곳마다 지원서를 내고 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아직 없다. 두 아이를 둔 강 씨 부부는 맞벌이로 매달 250만 원가량을 벌었지만 강 씨가 해고되면서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는 “아내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아 더 미안하다”며 “퇴직금으로 받은 300여만 원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것도 곧 바닥날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강 씨는 “마냥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어 대리운전이라도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 정치인에겐 명분싸움, 당사자에겐 생사 달린 일

해고된 이들 가운데는 법 시행 유예로 복귀가 가능해지면 그 기간만큼이라도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간 유예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강 씨는 “당장 급하니 1년이든 6개월이든 일을 하고 싶은데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진척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나 높은 분들은 명분싸움에 불과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목숨 줄이 걸린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씨는 비정규직 해고 문제가 이달 초에 잠깐 부각되는가 싶더니 금세 미디어법 등에 묻혀 버린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박 씨는 “우리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인데 정치권에서는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1년 반을 유예한다고 하더니 1년, 6개월 등으로 기간이 계속 바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모 씨(27)는 “1, 2년 유예돼도 결국 해고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런 일은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며 “오래 일을 시킬 것이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해고된 비정규직 직원 가운데는 장애인들도 있어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이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고된 사람들은 비정규직을 위해 만들었다는 법이 자신을 겨누는 부메랑이 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모 씨(25)는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지면 정규직 전환이 늘어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더라도 일은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라고 말했다. 그는 “토공도 해고된 비정규직 자리를 마냥 비워놓고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른 부서에서는 새 사람을 채용했다는 소문도 들려 이러다 돌아갈 자리마저 없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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