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신념으로 수혈거부 사망, 의사에게 책임 물을수 없다”

  • 입력 2009년 6월 27일 03시 00분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술 중 수혈을 거부한 환자가 숨졌을 경우 집도의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광주지법 형사1단독 박정수 부장판사는 26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환자에게 수술 중 혈액을 공급하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의사 이모 씨(52)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환자가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자신의 혈액에 의한 자가수혈만 허용하고 타인의 수혈을 거부하는 ‘무수혈’ 수술을 선택했다면 생명에 중대한 위험이 생길 가능성이 생긴다 해도 그 결정이 헌법상 허용되는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환자가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얻은 뒤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자가수혈만을 고집했다면 그 결정은 존중돼야 하고 의사는 이에 따라야 한다”며 “타가수혈(남의 혈액을 공급받는 것)을 제외하고 가능한 치료방법을 시도했다면 비록 환자가 숨졌다 해도 의사의 진료는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여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광주지법 김종복 공보판사는 “이번 판결은 환자가 선택한 치료방법이 위험성을 크게 키운다 하더라도 죽음을 목표로 한다고 볼 수 없는 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사안과 결론이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어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광주 조선대병원 의사인 이 씨는 2007년 12월 20일 오전 11시경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환자(당시 62세·여)에 대한 인공고관절 시술 중 출혈량이 많았는데도 수혈을 하지 않아 10시간 30분 만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환자는 수술 전에 ‘수혈을 원하지 않는다. 병원과 의료진에 이로 인한 모든 피해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병원 측에 제출했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