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등 8297명 울린 다단계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250억대 물품 팔아… 돈 못갚아 접대부 전락도

권모 씨(23)는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2년째 백수로 지냈다. 취업을 하지 못해 걱정인 차에 기분전환 겸 피부마사지를 받으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집을 나섰다. 하지만 친구가 데려간 곳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사업교육장이었다.

“피부 마사지보다 좋은 걸 알려줄게요.” 사업교육장에는 권 씨 외에도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많았다. 취업을 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권 씨와 취업준비생들은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든 때에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깜빡 속았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1박 2일간 교육도 받았다. 권 씨는 구미가 당겼지만 물품을 살 돈이 없었다. 그러자 대출중개업자 박모 씨(32)가 나섰다. 취업자금 명목으로 700만 원을 선뜻 대출해 줬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3일 “불법 다단계 영업을 통해 250억 원대의 물품을 팔아 돈을 챙긴 혐의로 다단계업체 M사 대표 김모 씨와 대부중개업자 박 씨 등 18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M사 대표 김 씨는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등 물품을 구입하고 판매원을 모집해 오면 평생 고수익을 보장해주겠다”고 속여 권 씨 등 8297명에게 250억 원어치의 물품을 팔아 돈을 챙겼다.

대출중개업자인 박 씨는 돈이 없어 물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출을 알선해 줬다. 이들은 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을 상대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물품구입비가 없는 회원에게는 대출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겼으며, 물품구입비를 빌린 회원 가운데 일부는 대출금을 갚지 못해 유흥업소 접대부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과 유사한 수법으로 불법 다단계영업을 하는 업체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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