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빚 갚으려고 돈 빌렸어도 위법”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10분


“재산공개 누락 공직자윤리법 위반”

‘미처 갚지 못한 빚’을 갚기 위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0억 원을 빌렸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대통령 재임 중에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5차례나 공개한 재산변동사항에 이를 뒷받침할 채무관계를 신고했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의 돈 10억 원을 받은 시점은 재임 중인 2005, 2006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때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변동사항에는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재산 총액은 재임 5년 동안 4억7200만 원에서 9억7200만 원으로 5억 원가량 늘어났다. 이 가운데 권 여사 명의의 채무는 2006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한 2007년 3월 재산변동사항 공개 때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 중도금을 내기 위해 1억6400만 원을 빌렸다”고 신고한 것이 전부다. 노 전 대통령 본인 명의의 채무는 2003년 취임 직후 재산공개 때 은행 대출금 1000만 원을 신고한 것과 퇴임 직후인 2008년 4월 재산 공개에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신축공사비로 4억6700만 원을 금융기관에서 빌렸다고 한 것이 전부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권 여사가 진 빚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더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 생활을 오래 했고 원외(院外) 생활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세진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여사의 채무가 대통령 취임 이전에 생긴 빚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 측은 2004년 재산공개 때 취임 직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빌라를 4억5000만 원에 매각해 이 가운데 1억9000만 원가량을 채무 변제에 썼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시 매각잔금 2억6000만 원가량이 남아있었고, 이후 4년 동안 5억 원 정도 재산이 불어난 점을 감안하면 빚을 갚기 위해 박 회장에게서 10억 원을 빌려야 했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채무가 있어서 돈을 빌렸다고 해도 이는 공직자윤리법을 위배한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은 재산등록 때 허위로 누락할 경우 경고와 과태료 부과, 해임 등의 징계를 하도록 돼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미 퇴임한 이상 이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지는 않겠지만, 최고위 공직자로서 법을 어겼다는 비난은 면하기 어렵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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