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해진 ‘검은돈 루트’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9분


朴회장, 해외계좌-한인식당 이용

親盧의원들에 수만 달러씩 전달

朴회장 개인금고에 늘 현금 3억 이상 보관

돈 로비 시점 파악 애먹어

민주당 이광재 서갑원 의원이 미국 뉴욕 맨해튼 한인가의 한식당인 강서회관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만 달러씩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 회장의 금품 전달 수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외에서 달러로=박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통해 강서회관 사장 K 씨를 소개받은 뒤 K 씨에게 정치자금 전달 역할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박 회장은 검찰에서 “이 의원이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K 씨에게 맡겨놓은 돈 수만 달러를 받아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같은 진술과 K 씨에 대한 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이 의원을 추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 의원도 똑같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전달받은 진술이 나왔다고 한다.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이처럼 해외에서 달러로 돈을 주고받을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검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금품 제공 방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에서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홍콩 법인 APC 계좌에 배당수익금을 관리해온 박 회장으로서는 달러화를 조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홍만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25일 브리핑에서 “박 회장이 해외에 운영하는 법인에서 달러를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중국 칭다오 현지 공장에 초청한 의원 등에게도 달러로 마련한 뭉칫돈을 건넨 사실이 없었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구속기소) 측에 건넨 250만 달러도 홍콩 APC 법인 계좌에서 역시 홍콩에 개설돼 있던 정 전 회장 측의 계좌로 바로 송금됐다. 해외 계좌에서 해외 계좌로, 또는 해외 계좌에서 인출한 달러를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박 회장은 일찌감치 ‘역외 송금’의 안전성을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지인이 관리하는 계좌로 500만 달러가 건네진 것도 비슷한 수법이라고 볼 수 있다.

검찰이 박 회장의 홍콩 법인 APC사의 계좌 자료를 완전히 확보하게 되면 이 같은 ‘신종수법’은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이 이 회사에 차명 배당 소득으로 축적한 액수만 6746만 달러로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개인 금고, 수사 걸림돌=박 회장은 평소 자금 관리에도 치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3억 원 이상의 현금을 보관하던 사무실의 개인 금고에는 인출 시기가 서로 다른 현금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누군가에게 정치자금이나 로비자금을 건네야 할 때에는 이 금고에서 바로 현금을 꺼내 썼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금고가 비게 되면 배당금 등이 들어 있는 계좌에서 현금으로 돈을 인출해 금고에 채워 넣어 늘 3억 원 이상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로비자금을 관리하다 보니 검찰은 수사 초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은행에서 인출해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돈을 꺼내 썼기 때문에 은행 인출 시점과 실제 돈을 건넨 시점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

이 때문에 검찰은 금고의 존재와 용도를 알기 전까지 박 회장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을 맞추는 데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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