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파산 줄고 회생 신청 늘어

  • 입력 2009년 3월 25일 03시 25분


“빚 못갚겠다” 개인 파산 줄고 “덜어만 주오” 회생 신청 늘어

채무면책 심사 엄격… 작년 파산신청 23%↓

‘성실히 갚으면 일부 탕감’ 회생은 꾸준히 증가

#사례1. A 씨(60)는 2000년 23년간 다닌 은행을 그만두고 패널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명예퇴직금 4억 원에 대출금 7억 원을 보태 회사를 차렸지만 원자재 값 폭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A 씨는 대출을 갱신하면서 부모와 아내 등을 보증인으로 세웠으나 7억 원의 빚과 함께 가족 전체가 보증 때문에 파탄 상황에 몰렸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았고 무료 상담을 통해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채권자들은 사기파산이라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숨긴 재산이 없다는 점이 입증돼 이달 5일 가족 모두가 파산 면책을 받았다.

#사례2. 서울 성북구의 작은 무역회사에 다니는 B 씨(28)는 지난 5년간 월급 150만 원의 대부분을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형과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치료비로 썼다. 매달 수백만 원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신용카드 5장으로 ‘돌려막기’를 했다. 빚이 4000만 원에 육박하자 그는 개인파산을 신청하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았고 ‘개인파산’보다는 ‘개인회생’ 절차가 낫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공단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달 19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로부터 빚의 30%를 탕감 받고 나머지는 매달 40만 원씩 5년 동안 갚기로 하는 개인회생의 기회를 얻게 됐다.

경기 침체로 부채에 허덕이는 서민들이 빚을 털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패자 부활의 기회’를 달라며 법원에 몰리고 있다.

24일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공단에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4877건. 2005년(746건)보다 6.5배나 늘었다. 공단의 도움으로 탕감 받은 부채 총액도 2005년 602억 원에서 지난해 6160억 원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도덕적 해이’ 파산 신청 막아야=개인회생이란 빚의 일부만 탕감해 주는 제도. 꾸준한 수입이 있는 채무자가 최저 생계비를 뺀 나머지 돈으로 최장 5년 동안 빚을 성실히 나눠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해준다. 변제계획안을 인가받으면 신용불량자를 면하는 등 신분상 불이익은 없지만 미래의 수입까지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

반면에 개인파산은 현재의 빚을 모두 면제해 주는 대신 사회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공무원은 퇴직해야 하고, 변호사는 등록이 취소되며 대출은 물론 취업도 쉽지 않다. 물론 파산 면책을 받으면 이런 불이익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회생보다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이 매년 급증했다.

법원 관계자는 “2007년 서울중앙지법의 개인파산 신청은 5만여 건으로 개인회생 신청 건수 5200여 건의 10배에 달했다”며 “도덕적 해이까지 겹쳐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파산 면책 기준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산 주춤, 회생 증가 추세=법원의 채무 면책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최근 개인회생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파산 신청은 주춤하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 이후에도 파산 신청은 예년보다 줄어들었다. 지난해 전국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11만8643건으로 2007년(15만4171건)보다 23%나 급감했다.

개인회생 신청도 지난해 4만7874건으로 2007년보다 6%가량 줄었지만 하반기부터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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