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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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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화 이후 더 획일화된 입시
어쩔 수 없이 서울대가 조사에 나섰다. 서울대가 중시하는 특정 과목의 내신 점수에서 과학고 2등 학생이 1등 학생보다 높아 합격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가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거듭 느낄 수 있다. 입시에서 떨어진 많은 학생의 부모들이 너도나도 ‘우리 아이가 왜 떨어져야 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하면 대학은 마비될 것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사회는 대학을 믿어주고, 대학은 공정하게 학생을 뽑고 있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올해는 대학입시 자율화의 원년(元年)으로 불린다. 매년 시시콜콜 잔소리하던 정부는 뒤로 물러섰다. 대학교육협의회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입시 업무를 물려받았지만 대학끼리의 단체라서 대학에 뭐라고 요구할 처지가 아니다.
뜻 깊은 변화다. 권위주의 정권은 입시를 ‘대학 길들이기’의 방편으로 이용했다. 지난 정권은 대학입시를 노골적으로 통제했다. 아직 ‘3불 정책’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대학들은 실로 수십 년 만에 관(官)의 사슬에서 벗어나 입시를 치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주어진 자율만큼 책임감을 갖고 입시에 임하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대입 정시모집의 두드러진 특징은 논술고사의 소멸이다. 지난해에는 45개 대학이 논술고사를 치렀으나 올해는 13개 대학으로 크게 줄었다.
대학들은 얼마 전까지 ‘논술 예찬’을 늘어놓았다. ‘21세기 인재를 찾아내는 데 가장 적절한 시험’이라느니,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바람직한 방법’이라느니 했다. 그랬는데 한순간에 논술고사를 없애버렸다.
열성적인 교사들은 제자들의 논술 준비를 위해 교육청과 대학이 주최하는 논술 연수회까지 쫓아다니며 공을 들였으나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대학 말만 믿고 논술을 준비해온 수험생들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이 크게 늘었다. 수능 성적을 100% 반영하는 대학은 지난해 11개에서 올해 72개로 늘어났고, 80% 이상 반영하는 대학도 97개나 된다. 수능이 점수제로 바뀌면서 변별력이 커지자 대학들이 수능 쪽으로 우르르 쏠린 것이다. 이런 획일적인 입시 방식에는 최고 학문기관인 대학으로서 어떤 학생을 뽑아 어떤 인재로 만들겠다는 최소한의 고민이나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가볍고 속 편한 대학들이다.
어떤 학생 뽑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1990년대만 해도 수능은 ‘과외가 통하지 않는 시험’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가 학원들이 수능에 대한 현미경 분석에 나서면서 ‘올해 수능에는 어떤 문제가 나온다’는 학원 강사들의 예측이 들어맞는 일이 잦아졌다. 수능을 쇄신해 사교육의 사정권 밖으로 빼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능이 입시에서 중요한 기준임은 확실하지만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학이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으려면 입시를 다양화해야 한다. 외부 눈치를 보느라 저소득층 자녀에게 마지못해 입학을 허용할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소외계층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특색과 강점을 살리기 위한 여러 전형방식을 깊이 고심해야 한다. 대학이 그동안 입시자율권을 위해 투쟁한 목적이 ‘수능 100% 선발’이나 하려고 했던 게 아니지 않은가. 대학의 자율은 언제나 무거운 책무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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