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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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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선 목욕 돕고 건강상태 체크
“바다를 본 게 얼마 만이야….”
20일 강금여(91·여·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씨는 동해안 해변 도로를 달리는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감회에 젖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과 냄새는 그간의 세월을 날려버리는 듯했다.
이날 아침 강 씨는 빨간 외투에 직접 뜬 하얀 털모자를 쓰고 집을 나서며 ‘이 나이에 자식 도움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다.
91세에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우연히 접한 신문 기사 덕분이었다. 평소 신문을 꼼꼼히 챙겨 읽는 그의 눈에 ‘정부가 저소득층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국내 여행을 시켜준다’는 기사가 들어왔다. 거동조차 쉽지 않은 몸이었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둘째 며느리에게 신청을 부탁했다.
강원 속초시에 도착하자 강 씨는 바다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릴 채비를 했다. 요양보호사는 그를 위해 휠체어를 준비했다.
○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여행
보건복지가족부는 20일부터 장애인과 저소득층 노인이 총비용의 10%(2만5000원)만 내면 국내 여행을 할 수 있는 ‘장애인·노인 여행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여행비용이 부담스러운 장애인과 저소득층 노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20, 21일 24명의 노인과 장애인이 참가한 프로그램을 동행 취재했다.
1박 2일 강원도 여행은 4곳을 들른다. 서울 광화문·잠실에서 출발해 속초에 도착해서 TV 드라마 ‘대조영’ 촬영지로 유명한 설악씨네라마를 둘러보고 고성 통일전망대를 구경한다. 1박 후 설악산 국립공원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쐰 후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여행의 특징은 장애인과 노인이 편안하게 여행하도록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이 옆에서 돌봐준다는 것. 걷는 데 이상이 없는 참가자는 4명당 1명, 휠체어가 필요한 참가자는 1명당 1명의 도우미가 여행을 도와준다.
평소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은 이동에 따르는 걱정이 없어지자 처음 소풍 온 초등학생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행지를 둘러봤다.
서정순(66·여·경기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씨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한쪽 다리가 마비되면서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딸이 여행 신청을 해줬을 때만 해도 ‘걸음도 잘 못 걷는데 어떻게 여행을 가나’ 하고 걱정했다.
그는 “30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식 4명을 키우기 위해 시장에서 채소를 팔며 억척같이 살다 보니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며 “TV에서 보던 동해 바다를 보니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 도우미가 건강 챙기고 말동무도
첫날 일정을 마친 후 콘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방 2개, 거실 1개로 이뤄진 콘도 1실을 2명 정도가 사용한다. 거실은 요양보호사 1명이 사용한다.
식사는 주로 한식이 제공된다. 7000∼1만 원인 순두부, 버섯전골, 황태국, 해물탕 등이 주요 메뉴이며 간식도 제공된다.
요양보호사들은 관광을 도울 뿐 아니라 저녁과 취침 시간에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고 혈압, 혈당 상태를 점검해 준다. 또 여행 내내 노인과 장애인의 말동무도 해 준다.
서 씨의 경우 여행 이틀째에 보호사가 혈압을 잰 뒤 잠시 인근 병원에 들러 검사와 치료를 받고 다시 관광에 합류했다.
차순남(79·여·서울 강서구 화곡3동) 씨는 2년 전 허리수술로 허리 근육이 약화돼 혼자 걷기 어려웠다. 여행을 하고 싶어도 자신을 보조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는 “전문도우미가 세심하게 도와줘서 여행이 힘들지 않다”며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오경희(40) 씨는 “처음 낯을 가리며 어색해하던 장애인과 노인분들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어 드리면 소소한 집안 얘기까지 하면서 즐거워하신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4급인 윤종명(서울 강서구 가양3동) 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어서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근근이 살고 있는데 넓은 바다를 보니 희망이 생긴다”며 “이번 여행은 삶에 큰 활력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지체장애 2급인 김상대(32·서울 광진구 구의2동) 씨는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에 의존해 천천히 걷기도 했다. 김 씨는 2004년 뇌경색 수술을 한 후 움직임이 불편하고 말도 어눌해졌다.
그는 “수술 후 집 근처만 겨우 돌아다녔는데 설악산의 흙을 밟아 보니 기쁘기만 하다”며 밝게 웃었다.
여행 후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참가자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속초=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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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도우미 서비스 받으려면…▼
장애인-저소득층 노인 우선
연령-장애정도 감안해 선정
‘장애인·노인 여행지원 프로그램’은 비용이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현재 서비스를 시작한 강원도 여행을 기준으로 참가자는 2만5000원만 내면 된다. 전문 도우미 서비스를 포함해 총 여행비용 25만 원의 10%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 프로그램은 장애인과 노인 여행을 위한 기반 시설과 서비스 기관을 육성하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가 지원하고 사업자(CTL네트웍스) 역시 일부 금액을 지원한다. 나머지 금액 중 15만 원(60%)은 정부, 7만5000원(30%)은 사업자가 낸다. 복지부는 2년간 12억 원을 들여 8000명의 노인과 장애인에게 여행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거나 소득이 전국 가구의 평균(4인 가구 기준 월 370만5000원) 이하인 65세 이상 노인만 신청할 수 있다. CTL네트웍스 홈페이지(www.rplus-tour.co.kr)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e메일(rtour@ectl.net), 팩스(02-3153-2599) 등으로 신청하면 된다. 고객센터(1577-2558)에서 궁금증을 안내해 준다.
고혈압 당뇨 등을 앓고 있는 경우 건강 상태를 미리 알려주는 게 좋다. 그래야 요양보호사가 여행 중 비상상황 발생 시 대비할 수 있다. 여행하기에는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인데도 자신이 선정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병을 숨겼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복지부는 호흡기질환자, 정신지체자는 여행 시 문제가 없다는 의사소견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는 장애인등록증, 주민등록증을 토대로 연령과 장애 정도를 감안해 참가 대상자를 선정한다. 선정되면 2만5000원을 입금하면 된다. 강원지역 여행은 10월 22일 시범서비스를 시작해 11월 20일부터 본격 운영되고 있다.
여행은 대개 한 대의 버스에 노인과 장애인이 같이 타지만 신청자가 많을 경우 16∼35인용 휠체어 리프트 버스, 일반 41인승 리무진 버스를 운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강원도 여행 외에 백암온천관광, 수안보온천관광 등 2개 코스(1박 2일·2만5000원)도 있는데 앞으로 여행 코스를 전국으로 늘릴 계획이다.
CTL네트웍스는 △12월 말∼1월 제주도 2박 3일(본인 부담 20만 원 내외) △2009년 상반기 경주 1박 2일(2만5000원), 지리산 1박 2일(2만5000원) △2009년 말 중국 등 10여 개의 여행 코스를 준비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