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남아선호 완화된 현실’ 고려

  • 입력 2008년 8월 1일 03시 04분


헌재소장 결정 이유 설명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31일 태아 성 감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태아의 성 감별 고지를 무조건 금지한 조항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고 의료인의 직업활동 자유와 임신부의 알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헌재소장 결정 이유 설명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31일 태아 성 감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태아의 성 감별 고지를 무조건 금지한 조항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고 의료인의 직업활동 자유와 임신부의 알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임신 말기까지 성감별 금지는 지나쳐”

헌법재판소가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법으로만 금지돼 있을 뿐 사실상 공공연하게 인정돼 온 관행을 현실화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태아 성별 고지 금지 규정은 성비 불균형 해소, 태아 생명 보호 등 나름의 정당한 목적이 있었지만 관련 법 조항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에 대해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말기엔 낙태 자체가 어렵다=헌재는 임신 전 기간에 걸쳐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하는 것은 의사의 직업상 기본권과 태아에 대한 부모의 알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신 기간이 통상 40주라고 할 때 낙태가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도 있지만 낙태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위험한 시기가 있다”고 밝혔다.

모자보건법 14조가 태아에게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만 같은 법 시행령 15조 1항이 그러한 예외적인 낙태도 임신 28주가 지나면 금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재판부는 “임신 말기에는 예외적으로 태아 성별 고지를 허용하더라도 성별로 인한 낙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성별 고지가 낙태의 원인인가=형법에는 성별에 따른 낙태뿐 아니라 모든 경우의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 낙태죄를 형사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그럼에도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것은 형법상 낙태죄만으로는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오늘날에는 입법 당시(1987년)에 비해 남아선호 경향이 현저히 완화되고 있고 2006년 여자 100명에 대한 남자 성비(性比)가 107.4로 자연 성비 106에 가까워진 점 등에 비춰볼 때 성비 불균형이 과연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인지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특히 태아 성별 고지가 낙태의 원인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유일하게 합헌 판단을 내린 이동흡 재판관은 “임신 후반기에도 태아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태아 생명 보호와 성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모든 임신 기간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예진(연세대 경영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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